동네 벗

우리가 이어갔던 진심의 순간들

by 고요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고급 영어회화 모임이었다. 영어로 일상생활의 말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여전히 영어가 외국어이고 일상에서 쓰일일이 전혀 없는 나 같은 부류의 애매한 레벨은 영어를 위해 학원을 다니기에도, 스터디를 하기에도 어정쩡한 레벨이다. 여전히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고급, 상급 반에 가게 될 경우, 레벨이 애매하게 꼬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어떻게든 꾸려보려 애쓰지만 언어란 결국 상호작용임을 어떻게든 깨닫게 되고, 결국 맘 카페를 기웃거리게 된다. 고급 영어회화를 위한 사람들이 있나 알아보던 중에 비슷해 보이는 모임이 있어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우리는 만났다. 처음에는 영어회화에서 시작하여, 독서모임과 간략한 자유 글쓰기를 겸비한 모임을 지나 현재는 아이들의 영어 놀이 품앗이로 성격을 달리하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들과 함께 하는 일주일의 한 번의 시간은 실로 나의 삶에 큰 힐링이자 선물이다.


S는 오랜 기간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다섯 살 남매 쌍둥이의 엄마다. 냉철한 듯 언제나 단정한 외모 안에 감춘 뜨끈한 정을 품고 있다. 그녀를 보면 까마득히 잊고 있던 프로페셔널한 삶을 절로 상상하게 된다. 그녀의 공간은 정말이지 딱 그녀 같다. 단정하고 아름답고 숨겨진 재능을 찾아낼 것만 같은! 그녀는 그런 공간을 지어 우리를 초대했다. E는 여섯 살 딸아이와 막 세상에 찾아온 귀여운 한 달 된 막내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기사를 쓰고 그림책을 전해주는 일을 하는 엄마이다. 사서였던 E는 우리의 모임에서 종종 아름다운 그림책을 가지고 와 나누어주곤 하였는데 주야장천 읽어주기만 했지, 그림책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다. 마지막 멤버는 나. 열 살 일곱 살의 남매를 키우는 전업주부 십 년 차. 이러저러한 나의 커리어는 이제 말하기도 구차한 오래전 과거가 된 사람이다. 엄마 사람 연차가 이들 중 가장 많아 먼저 접한 자가 되어 조금 먼저 겪어 아는 자잘한 육아팁과 텐션 담당을 하고 있다.


우리는 처음 여느 회화 모임들과 비슷하게 시작했다. 기사를 읽고 각자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S가 판을 깔아주었다. 매주, 각자의 재능기부 형식의 비공식적인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E는 그림책에 관한 세미나를 나는 언어 습득에 관한 세미나를. 그리고 S로 인하여 꼬꼬마들을 키우는 우리들이 접하지 못하는 현재의 고등학생의 현주소도 들을 수 있었으니! 이 모임은 엄마 사람으로 관계를 새롭게 맺어가며 늘 겉돌며 아이들을 위해 만나는 관계 속에 긴장하던 나에게 샘물과도 같았다.

매 달 한 명씩 골라주는 책을 챙겨 읽다 보니 우리는 셋 모두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함께 책을 이야기한 후, 마지막 몇 분을 남기고 아무나 글감 하나를 크게 던지면 타이머를 맞추어두고 1분 동안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1분이었다 2분이었다 5분이었던가? 타이머에 맞추어져 바로 받은 따끈따끈한 글감으로 써 내려간 글을 각자 읽었다. 어쩌면 모두 다 다른 글들이 나오는지 신기하다. 어느 정도의 패턴을 읽게 되었는데 냉철한 S의 경우,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글로, 민감하고 감성적인 E와 나는 보통 감성적인 글을 만들어냈다. 그 안에서도 나는 늘 직접 경험이 들어갔고, E는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다루곤 했었다. 이런 것들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하였다.


우리의 모임은 "우리", 즉 어른의 모임으로는 수명을 다하고, 새롭게 "아이"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자연스럽게 모임 안에서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들어와 영어로 하는 놀이시간이 되었다. 매주 자율적으로 재미있는 놀잇거리들을 준비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귀했다. 아이들의 나이가 5,6,7세로 모두 달랐는데 각자의 나이 위치에 맞게 서로 화합을 맞추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유독 좋았다. 예민하고 낯을 가리는 아이를 키우느라 엄마가 함께 들어가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아이만 홀로 가서하는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우리 아이에게는 정말 맞춤형의 감사한 기회이기도 했다. 날씨가 좋으면 밖으로 나가 놀았고, S가 수업이 없는 날은 S의 학원에서 모이기도 하였다.

유독 마음이 편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벗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아무 날도 아닌데, 꽃을 나누어주는 그녀들, 아무 날도 아닌데, 향이 좋은 커피라며 보내주는 그녀들, 아이들의 웃음을 위해 만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녀들을 만나는 날이면 나의 마음 한편이 채워졌다. 엄마가 되어 현실을 살아가며 가졌던 긴장감에서 조금은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현재를 대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인연을 만들 때면, 온라인 관계가 오프라인의 관계보다 더 편했다. 온라인 벗들과는 글로 소통을 하고 비슷한 관심 부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별히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 있더라 하더라도 모른 채 지나 가진다. 그만큼 덜 긴장하게 되고 마음이 편했는데,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신문명에 약하고 컴맹이 다 된 내가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알아야 하고 해야 하는 것들 속에서 만나지는 사람들,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만나지는 다양한 관계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을 위해 만나지는 관계에서 나는 끊임없이 긴장했다. 마음이 편하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조여왔고, 마음을 주었다가도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마음을 어디까지 줘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만나는 사람은 너무나 다양한데 모두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가 아닌 '아이'라는 매개로 만나지는 사람들이었고, 수줍은 내가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가 갈수록 모호했다. 초반에 너무 적극적으로 쓴 가면은 덫이 되고, 소극적으로 행하던 가면은 독이 되기도 했다. 진심으로 대해서 진심으로 돌아오는 관계도 많았지만, 진심으로 대했지만 끝내 오해로 돌아오는 관계 또한 있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실제 face to face로 만나는 동네 벗 중에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게 그녀들이 없었다면 정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은 자명한바! 아이는 일주일 중 이 모임이 있는 날을 가장 좋아한다. 날씨가 좋으면 신나게 야외에서 뛰어놀고 즐거운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는 동생들이 있어 맏형아로서 책임을 느끼며 임한다. 이만치 나이가 들어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만 치의 우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다. 나의 삶이 누구 맘이라는 이름하에 나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님에, 갈수록 어려워지는 관계이지만 그래도 마음 둘 구석이 있다는 것이. 오랜 친구가 아니어도 동네에서 만난 인연도 이렇게 이어질 수 있음에 작은 희망을 품는다. 그녀들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중에 만난 동네 엄마들에게 말이다. 뒤늦게 만난 우리의 인연이 소중하게 이어져 가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우리들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각자의 삶 안에 거미줄처럼 엉킨 여러 인연들 안에서 우리가 이어갔던 진심의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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