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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Aug 10. 2022

눈물 한 방울로 확대된 글자

비로소 현재 완료형

"우리 입술은 언제나 너무 많은 소음을 담고, 우리 가슴속은 언제나 너무 많은 것들로 넘쳐난다. 성당에서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다. 촛불을 제외하고는. 초들은 피를 몽땅 쏟아낸다. 자신들의 심지를 남김없이 소모한다. 자신의 몫으로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그들이 자신을 고스란히 내어줄 때 이 헌신은 빛이 된다. "<직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78p>


성당에 앉아 기도를 한다.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 금세 다른 생각으로 기도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묵주기도를 하면 2단이 넘어가기 전에 잠이 솔솔 온다. 내가 하는 기도의 한계다. 어느 순간, 기도보다 그날 미사의 성서 중 마음에 밑줄을 그을 수 있는 문장 하나를 찾고 깊게 묵상을 하곤 했다. 잡념이 들어서지 않게 노력한 나름대로의 기도 방식이었다. 성서를 전부 읽은 적이 없음을 고백하면서도 미사 시간에 전해 듣는 한 조각 한 조각으로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

성서의 한 문장은 천사들의 눈물 한 방울. 성서 속에 있는 하느님을 찾아 처절한 몸부림을 쳐본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언으로 말을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터,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새벽녘 일찍 눈이 떠져 매일 미사 책을 들었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으면서 죽지 않은 신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토록 오래전에 죽었으면서 아직도 살아있는 신의 흔적을 따라간다.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글자가 번진다. 번진 채 확대된 글자.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히브리서, 11, 11>


믿음으로써. 믿음으로써. 믿음.

나는 믿는다. 기적을 믿고 사랑을 믿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간절함과 진실의 힘을 믿는다. 믿음은 희망이고 희망은 결코 우리를 져버리지 않는다.  죽어도 죽지 않고, 죽지 않아도 죽을 수 있는 것들을 믿는다. 눈물 한 방울이 닿은 곳. 그곳에는 믿음이 있다.


때마침, 비가 온다. 퍼붓듯 내리는 뒤늦은 팔월의 장마. 눈물이 흐른다. 나를 대신해 울어준 많은 사람들이 보낸 빗물 마음이 눈물 옷을 입었다. 눈물이 비를 타고 창문을 두드린다. 창을 열어 손을 내미니 손바닥에 쌓인다. 차갑고 차가운 눈물이 손의 온기를 만난다.

'눈물들이 여기서 조금 쉬어가라고.' 손을 오목하게 한다. 손에 쌓이는 누군가의 마음을 소중하게 담는다.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내내  현재 진행형이다 비로소 현재 완료형이 된다.


막내는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토록 주고 싶었던 세례였는데 시간이 이토록이나 흘렀다. 그리고,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기꺼이 대부를 자청해주신 첫째 친구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다시 하느님 앞에 겸손히 선다. 내가 보일 수 있는 사랑을 행동으로 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할 수 있는 헌신을 기꺼이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믿는다. 지금 이 순간, 완전하고 완벽한 완료된 이 순간을 위해 기도한다. 소리조차 없이 자신의 피를 쏟아내며 온 몸으로 기도하는 촛불을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이의 삶에 아름다움과 운명을 천사들이 같이한다. 마음이 고요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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