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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5. 2022

내일은 멋진 날이 되겠구나

평화로워 늘 당연시 여겼던 나의 오만한 삶은 완전히 깨졌다

2022년 8월. 일기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알은 세계고,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거대한 새는 발버둥 칠 뿐, 알 껍질이 두꺼워 실금만 길어질 뿐, 여전히 알은 깨지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지자, 거대한 새는 안온한 알 속이 좋았다. 편하고 따뜻한 곳. 그곳에서는 미쳐 날뛰는 그 어떤 것도 피해 있을 수 있었다. 안온한 알 속에 있던 새는 생각했다. '굳이 이 알을 깨고 나가야만 하는 것일까? ' 알 속에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소들이 없었다. 그곳은 새가 쉬이 할 수 있는 익숙하고 단순한 세계들이 반복되고 있었고, 새는 그곳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알은 던져졌다. 신은 거대한 새가 들어있는 단단한 알을 집어 들고는 높은 바위를 향해 던져버렸다. 알은 단번에 빠지직 소리를 내며 반으로 쪼개졌다.

   철퍼덕! 미처 부화되지 못한 거대한 새가 철퍽철퍽 자신의 알 속 세상의 일부를 밟아 대며 소리쳤다. 

  "내가 나간다고 했잖아. 그걸 못 기다려 왜! 씨발! 그걸 왜 못 기다리냐고!"

  자신이 안온하다 생각한 세상을 감싸던 껍질을 자신의 발로 짓밟으며 피비린내 나도록 껍질에 베이고 새로운 세상에 덴다. 거대한 새는 미쳐 날뛴다"나 같은 새 하나 그냥 알 속에 들어있다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던져 깨부순 거냐고!"


  꽥꽥 소리치며 몸부림치던 새는 이내 곧 죽어도 그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새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깜깜한 어둠과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정적. 바로 그때, 새는 자기 안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안간힘이 내는 진동을 느낀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피의 진한 소리를 듣는다.

  자신은 알 속에 그냥 있어도 되는 새가 아니었다. 자신은 피를 보고 파멸을 보고서라도 이 세상에 나와 모습을 드러내야만 하는 새였던 것이다. 새는 자신의 피가 속삭여 알려주는 소리에 드디어 귀를 기울인다. 


  알을 매몰차게 던져 파멸에 이르라 이른 신, 알을 강제로 깨부순 신, 그리고 깨진 반쪽의 알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새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피의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발아래에는 깨진 알의 파편이 가득하다. 선혈이 낭자한 자신을 지레 밟고 담담히 새는 걸어 나간다. 저벅저벅. 새가 지나간 자리에 그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는다.


  최근 나는 <데미안>을 다시 썼다. 헤르만 헤세 버전이 아닌 나만의 데미안은 흡사 이런 버전이 될 것이라 여겼다. 중학생 때 데미안을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반발심이 들었다.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알이 그저 알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해주는 사람 한 명 없는 세상이 야속했다. 왜 나와야만 하는가? 왜 그것이 전제인가!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이 쌓인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헤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해한다.

  나의 알에 균열이 갔다. 알 속에서 버티던 나는 죽었다. 건강하던 아이의 삶에 긴장이 맴돈다. 안온한 알 속에서의 삶. 평화로워 늘 당연시 여겼던 나의 오만한 삶은 완전히 깨졌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것은 죽음을 의식하며 매일을 새롭게 사는 삶이었다. 나는 더 이상 행복을 좇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고유한 행복을 생산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아닌 자신의 행복, 다른 사람의 소명이 아닌 자신의 소명을 찾아 행한다.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산다. '자식은 자신의 삶에 반짝 머물다 가는 손님'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의 삶에 잠시 들어와 반짝이며 지나갈 손님이 곁에 머무는 동안, 따뜻한 눈빛과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대한다. 그렇게 펼쳐진 아름다운 추억을 기록하는 삶, 그것이 나의 소명이다.


  오늘 아침, 나의 두 아이들을 보았다. 오늘의 아이들은 어제의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하루 사이에 빼꼼히 자라 있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놓치도록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 있다. 내 주변에서 세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이 내뱉는 말, 아이들의 행동, 먹는 음식, 변해가는 외모, 그리고 영글어가는 눈빛에서 나는 분 단위, 초 단위의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호의 입원 가방을 싸며, 나는 네 식구가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메뉴 삼아 분주한 손을 움직인다. 그리고는 첫째 안에게는 사랑의 쪽지를, 신랑에게는 지지의 마음을, 둘째 호에게는 응원의 포옹을 남긴다. 긴장 대신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한다.

"내일은 멋진 날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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