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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Aug 18. 2022

소리로 보는 병실

한밤중의 병실 일기

6인실은 소리와 공기와 물건과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환자, 보호자, 짐, 의료기구 들로 공기마저도 꼭꼭 차 있는 기분이다. 꽉 찬 공기 속에 커튼은 쳐져 있고, 한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얼굴은 볼 수 없다.


공간은 소리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탭의 영상 소리, 동요 소리, 말소리, 울음소리 등. 목소리 나이대와 성별도 다양하다. 겨우 목을 가눌 수 있는 아가야부터, 장애가 있는 청소년 형아야까지 다양한 나이 분포대의 환자들이 있다. 남쪽 지방 사투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멀리서 오신 분들도 계신 것 같다. 아빠의 목소리, 엄마의 목소리도.


우리의 자리는  6인실의 한가운데 자리다. 창문과도 방문과도 똑같은 거리로 떨어져 있는 이곳은 딱 두발을 딛고 설 공간을 제외하고는 남는 공간 없이 가득 차 있다. 최소한으로 짐을 챙겨 왔음에도 짐을 놓을 곳이 없어 창의적으로 머리를 굴려야 한다. 콜록콜록 기침 소리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커튼 속에서 보이지 않는 커튼 밖을 본다.

소리로 보는 공간, 코로나 시대의 병실이 그러했다.


밤이 되자 불이 꺼지고 깜깜해졌다. 암묵적으로 지금부터는 자야 하는 시간이다. 어둠으로 시각은 차단이 되었으나 여전히 소리는 계속된다. 옆 베드의 부자지간은 코를 멋지게 곤다. 신기한 하모니를 이루며, 아들이 고는 코와 아버지가 고는 코가 합쳐지는 구간에서는 웅장한 화음이 난다. 규칙적인 비트가 깨지면 '괜찮을 걸까?'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곧, 그런 나의 마음을 풀어주듯 엇박자의 멋진 박자 배틀이 시작된다. 고단한 그들의 병실 생활을 보여주는 멋진 하모니, 어딘가 슬픈 코골이 소리.


또 다른 옆 베드에서는 아가야가 쌕쌕이며 의료기구를 사용하며 치료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밤 중에, 말을 못 하는 아가를 간호하는 엄마의 외롭고 분주한 손놀림이 들린다. 안아 둥가둥가하는구나, 조금씩 병실 안을 걸으며 재우는구나, 얼른 나가 집에서 편히 자야지 아가야. 소리로만 보는 병원의 소리들은 언제나 나를 낮게 만든다.


병실 문을 열면, 밤의 세계에서 낮의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다. 암 순응한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한 곳을 응시하면, 간호사들이 분주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모두가 잠든 밤, 누군가 우리 아이를 위해 잠을 반납하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커다란 감동을 느낀다. '누군가가 깨어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실이 주는 엄청난 든든함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야밤의 병실 복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모든 소리가 말해주는 곳, 문 하나를 열면 낮과 밤의 세계가 바뀌는 곳, 눈물이 있는 곳, 웃음이 있는 곳, 용기가 있는 곳, 배려가 있는 곳. 이 모든 곳이 존재하는 곳이 병실이다.


나는 이곳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지만, 이곳에 올 때면 늘 배워간다. 나라는 인간이 더 낮아지고 더 깊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공간은 실제 존재하고, 밖으로 나온 나는 결코 이곳을 들르기 이전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 marceloleal80,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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