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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Aug 19. 2022

반짝이는 고통

물 한 모금이 주는 거대한 생명

"집에 가고 싶어."

간절한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의 전신마취가 시작되었다. 자기 생일 말하게 훈련을 그리 시켰건만 아직도 누가 '생일 말해 볼래?'물으면, 자기 생일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다. 마취 방에 함께 들어가 대신 생일을 말해주고 아이가 눈을 감는 것을 본다. 눈이 감기기 시작하자, 동시에 나직이 말했다.

"특별한 여행, 잘하고 와. 이따 만나자."

의료진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바깥 의자에 앉아 주머니에 넣은 묵주를 꺼냈다.


지난밤 사이 아이에게 두려움이 찾아왔다.

"엄마, 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돼?"

채혈을 하고 정맥주사를 맞을 때 고생을 하던 아이에게 오늘 받을 큰 검사를 해야 앞으로 위험한 일이 있을 때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직이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찼다.


병실에 있는 동안 십 년의 나이를 먹은 기분이 들었다. 피로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나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동시에 피로를 겹겹이 몸에 부착한 나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는 대견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견디지 못했기에 일부러 만들어 낸 생각인지도 모른다.


늘어진 긴 시간의 끝, 나는 회복실 안이다. 아이는 마취에서 깨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동맥을 뚫어 움직이지 말아야 할 다리가 허공에 버둥거리고 있었고, 악을 쓰며 '물이 너무 마시고 싶어요.'를 외치며 울고 있었다.


"엄마야. 엄마가 왔어."

이 말도 소용이 없다.

"물 좀 주세요 제발."

아이는 애원한다.

7시간 이미 금식을 한 아이다. 마취가 깬 후 족히 3시간은 더 금식이 이어지기에 물을 마실 수 없다. 왜 그러한지 논리적인 설명은 통하지 않는다. 아이의 입술은 허옇게 갈라졌고, 목이 타는 절실함은 갈라진 입술 틈으로 새어 나왔다. 거즈에 물을 축여 입술과 혀를 닦아보지만, 역시나 갈증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이런 거 말고! 꿀꺽꿀꺽 마시고 싶어요."

발버둥을 치며 우는 아이를 위에서 끌어안고 힘으로 제압한다. 온 힘을 다해 또박또박 말한다.

"지금 발버둥 치면 지혈이 안돼서 큰일 나. 동맥은 큰 혈관이라 잘못되면 안 돼!"


결국 아이를 달래지 못했다. 설득도 못했다. 위로도 못했다. 협박 아닌 협박으로  최소한의 안전을 지켜내야만 했다. 지혈이 되려면 움직이지 않아야 했고, 물이 없는 아이는 버둥거리며 괴로워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홀로 붕괴된 건물 더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폐허가 된 더미 가운데 덩그러니 홀로 남아 바라본 것은 무력감과 두려움이었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이 상황을 함께 헤쳐갈 수만 있다면 뚫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시기였고, 보호자는 무조건 지정된 1인으로 교대와 교체가 불가능했다. 철저히 혼자였다. 나와 나의 아이.


가족들이 곁에 있었다면... 병문안까진 아니어도 교대라도 되었다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더 힘을 충전하여 협력할 수 있었을 텐데...병원에서 가족은 부재하였다. 그러나, 부재하면서도 존재하는 것이 또 가족이었다.


피곤함을 다섯 겹 정도 더 쌓아 돌아온 병실에서 아이를 돌보며, 실제로는 부재하나 마음으로는 존재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믿으며 목소리를 다듬고 미소를 머금는다. 그렇다. 나는 현존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의 힘을 합한 새로운 형상이 되었다. 버텨낸다. 또 버틴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반짝이는 고통. 삶 속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생명과 그 생명들이 내는 반짝이는 빛. 그것들은 아주 어두운 이 터널을 지나지 않고는 결코 볼 수 없는 빛이다. 낮에는 수많은 다른 것들이 그 빛들을 죽이니까. 하지만 밤이 되면 나타나 낮에 보던 다른 수많은 면을 죽여버린다.


"이제 물 마셔도 된대."

"얼른 주세요. 제발"

꿀꺽꿀꺽꿀꺽

정신없이 물을 마시던 일곱 살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엄마, 물이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는 거였어."

그리고는 다시 정신없이 물을 제 몸에 들이붓는다.


낮에 보이는 수많은 것들을 죽여버리고 밤이 되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 나의 일곱 살 아이에게는 물 한 모금이 목구멍을 들어갈 때 느낄 수 있는 생명이 그러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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