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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19. 2022

'고통'과 '찬란함'을 연결하는 마음

세상은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햇살에 벽이 반짝인다. 순간 발견한 것은 하트 모양의 그림자.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 존재한다. 저만치 하늘 위에 달린 조형물이 내는 그림자가 하트 모양이라는 사실, 그 햇빛이 닿아 반짝이는 곳에는 어린이들이 그린 수많은 타일이 존재한다는 사실, 대학병원 내 어린이 병원에서 올려다본 천장은 이러한 모습이었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될 때, 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들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된다.


한참을 그곳에 앉아 외래 진료를 간 신랑과 일곱 살 아들을 기다린다. 그 사이 그곳을 드나드는 다른 환자들과 가족들의 모습을 본다. 휠체어를 미는 어머니의 모습, 링거 줄이 엉키지 않게 봐주는 아버지의 모습,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동그란 두상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어린이.


두려움 없는 내일.

두려움 없는 미래.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고 빌었던 것은 단지 두려움 없는 내일이었을 뿐. 나의 목표는 사는 것에서 '잘 사는 것'으로 변하였다. 슬픈 행복을 안고서야 보인다. 보이지 않던 그 모든 것들이. 따뜻한 그 슬픔을 덮고서야 들린다. 그동안 들을 수 없던 수많은 목소리들이.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감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그들과 어떻게 연결이 될지, 감히 내가 무엇을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주는 일이 된다." <쓰기의 말들, 은유, p.87>


그저, 아무것도 아닌 나의 이 삶이 누군가와 닿아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그래서 이제는 결코 나는 함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다시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가장 나답다 느끼는 순간들은 자연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바람이 내는 소리에 나의 머릿결이 춤추고, 바람이 내미는 손짓에 흔들리는 이름 없는 풀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동자가 반짝일 때가 아니었을까?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연결되어 있다. 살 얼음판을 잔뜩 기어갈 무렵, 내가 바라본 곳은 오로지 나의 두 손과 얼굴 바로 아래의 바닥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시야에는 수많은 다른 손길들이 있었다.


어쩌면 무참하게 짓밟혀버릴 수도 있었지만 나를 밟지 않은 자들, 한 여자가 울며 기어가고 있으니 혹여나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심려를 끼칠까 먼길을 돌아가던 이들, 기고 있는 여자의 굽은 등에 따뜻한 사랑을 덮어준 이들, 살얼음이 금방이라도 깨지지 말라고 모르게 모르게 차가운 바람을 불어준 이들. 얼음바닥이 더 꽁꽁 얼어 조금 더 걸어갈 수 있게 보내준 모든 것들.


그 어떤 것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그 무한한 마음을 나는 기록한다. 언젠가 내가 일어난 일이 누군가에게도 일어났을 때, 언젠가 슬픔이 온몸을 휘감고 두려움에 일어날 수 없을 거라 여기더라도, 작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지금 나의 마음이 흐르는 곳이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운'과 '찬란한'이라는 두 형용사를 붙여 연결해도 멋진 삶을 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니, 어린이들이 그린 희망의 타일이 어린이 병원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하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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