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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1. 2022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결국 수술은 불가능했다. 개두를 한다 해도 너무나 위험한 위치이기에 위험부담이 컸다. 치료를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방사선 치료.



의사 선생님께서는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과 후유증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린이기 때문에 어른과 달리 좀 더 다양한 형태로 그 부작용이 나타난다 한다. 심사숙고 후에 치료를 할지 결정을 하여 다음 주에 알려달라고 하셨다. 우리의 모든 결정을 존중해준다고 하였다. 



"우리 호는 머리가 어쩜 이렇게 똥그래~"

첫째 안이가 동생 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 같은 미소를 짓고 귀여워해 준다. 호는 누나의 예쁨을 받는 손길이 짧아질세라 "피츄~피츄~" 하며 고갯짓을 한다. 귀여운 포켓몬 흉내를 내며 사랑을 받아낸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귀여운 동그란 머리에 쏘여질 방사선을 상상한다.



치료를 하더라도 백 프로 제거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재출혈의 위험은 늘 안고 살아야 한다.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는 기도의 영역으로 남겨둘 일이다. 



무릎을 꿇는다. 왜 기도하는 사람의 형상은 늘 무릎 꿇은 모습인지 궁금했었다. 나는 늘 누워서 묵주를 잡았고 선 채로 기도했고 길을 가며 생각으로 기도를 남겨왔으니까.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저절로 나는 무릎을 꿇는다. 웅크리고 웅크려서 가장 작은 형상이 되어 온 마음을 다해 두 손을 모은다. 



내가 내뱉은 기도는 놀랍게도 부작용이 없게 해 주세요, 치료를 무사히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의 기도가 아니었다. 나는 빌고 또 빌었다.

"그저,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주와 같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우주를 품고 산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아주 일부분일 뿐, 그 안에 숨겨진 무한한 경험과 가능성과 비밀은 영원히 비밀이 되어 육체 안에 갇힌 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아이와 병원을 다니며 나는 알게 되었다. 무너지는 삶의 순간에도 읽을 수 있는 글이 있고, 그렇지 못한 글이 있다는 것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 혹시라도 이 글 한 조각이 무너져가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닿아 무릎 꿇은 그 무릎을 '호오~'하고 불어줄 수 있다면.... 이 글이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내가 받은 수많은 보이지 않는 마음들을 글자 안에 담는다. 


반딧불이를 담아 호롱불을 만들듯. 깜깜하고 어두운 밤, 보이지 않던 마음들이 빛이 되어 무너지는 마음을 비출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일기를 남긴다.


© Myriams-Foto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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