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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5. 2022

백색 바탕에 흘린 핏자국

아픔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손수건

많이도 울었다. 두려움에 절망에. 간절한 염원에도 눈물이 났다. 아이의 수술을 앞두고 지인이 보내준 선물은 아름답게 수가 놓아진 무명 손수건이었다. 한 땀 한 땀 염원을 담아 함께 아이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많은 사람들, 든든한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앞이 보이지 않던 이 시기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시를 쓴다.




각진 하얀 손수건. 

얼핏 보면 그저 하얗고 단정한 무명 손수건.

오른쪽 귀퉁이 작은 수.

한 땀 한 땀 색실로 어여쁘게 놓인 어여쁜 꽃.

바늘이 들어갔다 나온 자리.

백색의 티 없는 바탕에 흘린 핏자국.


백색의 무명천이 내는 말들.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름다운 손수건이 되기 위해 무명천이 참아냈던 침묵의 순간.

깨끗한 흰 바닥에 첫 바늘을 찔리던 용기.

하얀 천 위에 번지는 피의 자국들이 수가 되어 새로 피어난다. 


피방 울이 만들어내는 모양과 빛이 침묵을 깬다.

한 땀 한 땀 영근 마음.

다림질로 불순물이 제거된 구김살.

순수하게 영근 새 생명.

내게 온 손수건 한 장.


한 땀 한 땀 바늘을 찌르며 보냈을 마음.

거저 담기 고마운 그 마음.

마음의 봉헌.

한 땀 한 땀 피어오른 피의 열매.

아픔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손수건.


손가락을 무명천에 두고 더듬는다.

사랑이 내 안에 흐르게 둔다.

내 안의 사랑이 흘러넘치도록 가만히 둔다.

한 땀 한 땀.

오늘을 수놓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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