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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5. 2022

희망의 왕관

감마나이프 치료를 기다리며

아이는 내게 황금색 번쩍이는 도화지에 반짝이는 큐빅이 박힌 스티커로 꾸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특별한 왕관을 주었다. 왕관을 씌워주며 말했다.

"우리 엄마, 예쁘다."

그리고, 한참을 행복하게 웃었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못이 박힌 왕관을 준다. 왕관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동그란 머리에 못이 네 군데 이상 박힐 것이고, 아이는 살이 물러 어른보다 더 상처가 클 수 있다고 한다. 왕관은 쇠로 만들어져 무겁고 한번 쓰고 나면 고개를 돌리기도 머리를 들기도 힘들다고 한다. 무거운 쇠로 만든, 머리에 못이 박힌 왕관을 쓰고 하루 종일을 견뎌야 한다. 일곱 살의 나이에 말이다.



'내가 너에게 주는 왕관은 이토록 형편없구나.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색으로 만든 반짝이는 왕관을 씌워주었는데...'



왜 가시 왕관이었을까.

왜 예수님은 가시 왕관을 쓴 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신마저 버린 것 같은 그 순간을.

인간의 모습을 한 그들이 견디기에, 그 시련은 감히 어떠하였을까.

신마저 외면한 것 같은 그 순간을

오롯이 견디며 걷던 그 길이 얼마나 아득했을까.

무겁던 십자가 끝에서 보여준 부활.

죽음 끝에 보여준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십자가의 길 끝에는 '희망'이 있었다. 



"아가, 네가 쓸 이 왕관은 '희망의 왕관'이야. 고통의 왕관이 아닌. 이 끝에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과 행복을 가져올 희망의 왕관.

힘들고 무섭고 아프겠지만, 딱 한 번만 잘 견뎌주어 우리가 맞이할 부활을 누리자. 

예전처럼 신나게 함께 놀고 누리며 매사에 감사하며 그렇게 함께 오래도록 이 생을 담아가자."



감마나이프 수술 날짜를 받았다.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치료 과정에서 있을 통증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것이 어린이여서 더 방대하고 알 수 없는 영역들이 존재했다. 

'당장은 괜찮은데.... 지금은 잘 지내는데....' 하는 마음들이 앞서, 지금 하는 치료가 긁어 부스럼이 되지는 않는 것일까,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없는 날들이었다. 

'아이가 살아갈 날이 아직 구만리인데... 그냥 두었다가 나중에 재발하면 그때는 어찌하나.' 알 수 없는 미래는 불안의 깊은 늪으로 나를 가두었다.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장애물이다.'

에픽테토스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으로 안심하기보다, 고통과 슬픔의 상태에서도 우리 마음을 어떻게 반응할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통제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모든 것은 원래 불안정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온전한 받아들임으로 자유를 얻는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 통제를 잃게 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뿐. 나는 '희망'을 갖고 후회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의 강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믿는다. 



그리고 그런 염원을 담아 치료에 임할 것이다. 아이가 쓰는 프레임은 치료용 도구가 아니라 '희망의 왕관'임을. 찬란한 그 빛을 기억할 것이다. 부족한 내게 주었던 무한한 아이의 사랑, 아이가 견뎌낼 고통과 눈물, 무엇하나 빼놓지 않고 담아 나의 인생에 넣는다. 



먼 훗날, 인생은 정말 빨리 흘러가서 멈추서 서 돌아보지 않으면 놓쳐버릴 것 같아, 회상할 때 단연코 가장 환한 빛으로 나를 맞이할 이 '희망의 왕관'을. 이 왕관은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왕관임을. 나는 그런 왕관을 아이에게 씌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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