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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4. 2022

매일 죽는 여자

그녀는 딱 하루만 산다.

  그날이 조금씩 아득해져 간다. 아이는 이후, 출혈 부위가 회복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아이의 병은 혈관조영술을 진행한 결과 '출혈 가능한 모세 혈관성 기형'이라고 한다. 한번 터진 혈관이기에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였고 수술이 어려운 부위인지라 방사선 치료를 할 것이다. 감마나이프는 비교적 안전한 시술이라고는 하지만 어린아이이기에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오랜 시간 머리에 기구를 쓰고 있어야 하며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추후 있을 방사선 후유증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선택했고 굳은 믿음 안에서 아이는 잘 회복하였다. 아이가 왜 아픈지 몰랐을 때보다, 원인을 알아 치료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나를 위해주는 가족, 친구, 지인들의 커다란 응원과 기도 덕분에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낸다. 희망이 가득 찬 내일이 올 것이고 반짝이는 고통은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살얼음판을 기어가며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았고, 들리지 않던 마음이 들렸다.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찬란한'과 '고통'이라는 두 단어를 붙여 이 책의 제목을 만들었다. 내게 찾아온 '슬픈 행복'이 '찬란한 고통'을 겪으며 '깊은 사랑'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충만하게 하루를 누렸던 그 시절을 한 자 한 자 눌러쓴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지금의 나의 이야기가 작은 희망이 되길 소망하며, 그리고 곧 있을 아이의 방사선 치료가 무사히 마무리되길 간절히 염원하면서...


매일 죽고 매일 살았던 시절의 나에게 띄우는 한 편의 시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사랑과 격려와 간절함을 보내준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매일 죽는 여자>


그녀의 인생은 오늘 하루뿐.

오늘이야말로 모든 것의 해답이 되어 줄 것이며, 

오늘이야말로 그녀 안의 모든 것을 소멸할 수 있다.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하루는 매일 사라진다.

낮의 희미한 빛 마저 사라져 버릴 즈음, 

그녀는 죽음을 준비한다.

깜깜한 밤, 

밤이 죽여버린 낮.

그 밤이 찾아오면

그녀는 죽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롯이 느껴지는 심장과 피의 소리, 

고통이 끝나고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 

그녀는 진실의 핵에 도달한다.

삶의 저변에 닿는 그 순간, 

그녀는 영원히 잠든다.


새벽의 빛이 희미하게 올라오는 순간, 

그녀는 태어날 준비를 한다.

자궁의 아늑함과 어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어둠을 가로질러 빛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의 심장은 목소리들로 가득 찬다.


깊숙한 내면에서 만났던 무수한 목소리들, 

심연을 건드린 목소리들, 

소리들을 건져내어 심장에 올려놓는 순간 

동맥을 타고 피가 온몸을 흐른다.


피폐해진 삶 속에 온전히 존재하는 그녀의 생명.

하루치 피를 얻고 심장을 얻은 그녀에게 그녀는 말한다.

'이것은 행복이다.‘


특이한 유형의 행복, 

그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행복, 

진짜로 살아가는 행복,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도 살아남는 마음.


그녀는 딱 하루만 산다.

하루가 지나면 죽고 

긴 밤을 지나 새로 태어난다.

그녀는 매일 죽는다.

그리고 그녀는 매일 새로이 태어난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녀의 삶, 

매일 죽는 여자는 홀로 자판 앞에 앉는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쓴다. 

그녀는 매일 죽지만, 

그녀의 글은 매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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