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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Aug 08. 2022

우리는 특별한 여행을 떠날 거야

"왜 또 병원에 가요?"

우린 아주아주 특별한 여행을 할 거야.

언제냐고?

다음 주에.

어디 가냐고?

전에 있었던 그 병원 있지? 거기에 함께 머물 거야.

집에 가고 싶었던 거기? 응 맞아. 근데 왜 또 가냐고?


아. 이번에는 특별한 여행을 하기 위해 가는 거야.

스포츠카 좋아하지?  

우리 오늘도 혹시나 볼 수 있으려나 싶어 일부러 도산대로를 통해 왔잖아.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두 대나 보고, 페라리는 정말 많더라.

아.. 우리 집에도 하나 그런 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하하. 그래.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우리는 없네.


아,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우리가 할 특별한 여행이 스포츠카를 타고 하는 여행과도 닮았거든.

의사 선생님이 몸속에 아주아주 작은 카테터(catheter)라는 스포츠카를 준비할 거란다. 그리고, 그 카테터는 부릉부릉 너의 몸속 혈관을 타고 움직일 거야.


어디서 출발하냐고?

아, 사타구니 근처의 굵은 대퇴동맥을 통해 놓을 거야. 그것이 뇌까지 올라가서 길이 어떻게 생겼나 한 바퀴 주행을 할 거란다. 그러면 어느 길이 막혔고, 어느 길이 꼬불거리고, 어느 길이 공사가 필요하고, 어느 길이 위험한지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거야.

그 지도를 그리러 가는 거야.


그러고 나면, 나중에 스포츠카 카테터가 급하게 주행을 해야 할 때 미리 지도를 알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고 운전을 할 수가 있어.

미리 공사가 필요한 위험한 도로는 공사를 해놓을 수도 있고.

그런 멋진 여행을 하고 오려고 해.

꽤나 근사하지?

아플 거 같다고? 안 하면 안 되냐고?

그래. 걱정이 많을 거야. 하지만, 전신마취를 하고 하기 때문에 아픔을 느끼지 못할 거야. 잠시 의식이 사라지는데..

의식이 사라지면 죽는 거냐고?

아냐 아냐. 전에 코코 잠자고 검사한 것처럼, 이번에도 곧 엄마 목소리 엄마 얼굴 볼 수 있으니 큰 걱정하지 마렴.

전신마취라는 걸 할 거야. 마취 후 깨어나! 걱정 마.


다만, 하나 주의할 게 있어. 깨어나서 다리를 8시간 가까이 움직이면 안 되나 봐. 그래서 가만히 누워있어야 한대.

우리 상처에 피가 나면 어떻게 되었더라?

맞아. 혈소판이 상처 난 곳에 들러붙어 꾸덕꾸덕하게 되어 피가 멎고 딱지가 되었지. 잘 기억하고 있네. 역시 멋져.


카테터가 출발했던 그 장소가 동맥인데 많은 피가 흐르는 곳이야. 그곳에 피가 잘 멎어야 위험하지 않고 다시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게 된단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말한 시간만큼은 지혈이 잘 되도록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보자.

지겨울 거 같다고?

그러네. 지겹긴 하겠다. 우리 그럼 그 시간 동안 무얼 하면 재미있을까?

포켓몬 영화를 보고 싶다고?

좋았어. 이때다, 기회를 잡자. 또 뭐 더 하고 싶어?

포켓몬 게임도 하고 싶다고?

좋았어. 이때다, 기회를 잡자.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또 다 생각해봐. 도와줄게.


아, 방금 뭐라고 이야기했어? 미안해 못 들었어.

그래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엄마도 그래.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동안의 검사만도 몇 개를 했는데, 그 마음 너무 이해해.

물을 이번에도 못 마시냐고?

응. 그렇대. 검사 잘하고 나서 물도 밥도  많이 먹자.


힘들지? 그래도 이렇게 검사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우리 힘내서 잘하고 오자.

엄마와 너만의 비밀 여행.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여행으로 만들어보자.  

옆에 꼭 있을게. 손 잡아주고 머리 쓰다듬어줄게.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자렴.

아무 걱정 말고.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저 편히 하루하루 보내다 우리만의 멋진 비밀여행의 추억을 쌓고 오자꾸나.

아빠랑 누나랑 할머니 할아버지 다 부러워할 만큼 멋진 여행을 말이야.

....

잠들었어?

안심이 되었나 보구나. 잠이 든 거 보니.

엄마가 사랑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고마워.

잘 자. 우리 아가. 우리 잘하고 오자.




*인터넷을 찾아보기가 무서웠다. 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무슨 검사인지를 검색해보고 거의 희박하다고 하는 부작용과 위험성에 벌벌 떨며 모두 잠든 밤 무릎을 꿇은 채 힘겹게 무엇인지를 인지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에는 일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가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아이는 현재 건강하다. 환히 웃고 씩씩하고 잘 논다. 이거면 되었다. 이대로라면 이렇게 오래도록 커 자라면서 점점 더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이 있다.


내가 겁먹으면 안 된다. 병원에 보호자가 한 명이라도 더 올 수 있어 신랑과 무게를 나누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코로나 시대를 살며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강하다. 주문을 왼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무슨 일이 설령 있더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맡아야 할 병원의 냄새, 차가운 검사실의 공기, 마음 졸이는 시간들, 아이를 볼 때면 밀려오는 슬픔. 이것들은 고스란히 나 혼자의 몫이 되었지만,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쭈그리이지만 엄마니까. 나는 무능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는 호의 단 하나뿐인 엄마니까. 나는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이번에도 해내고 올 것이다. 울고 싶어도 웃고 걱정이 되어도 차분하게, 겸손히 기도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올 것이다.

나는 여기 있다. 세상 멋진 호의 멋진 엄마로. 그러니, 나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왜 또 검사를 해? 검사를 왜 이렇게 많이 해? 나 큰 병에 걸렸어?"

아이의 물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대답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비록 나는 작가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끝장나게 멋진 '진짜 작가'니까 말이다!


입원 전까지 코로나 조심하고 무사히 잘 다녀와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qimono,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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