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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17. 2023

토마토 마파 두부 덮밥

아이들의 쏘울 푸드

이십 대에 예고치 않은 사고를 당한 이후, 매해 유서를 쓰는 기이한 습관이 생겼다. 오토바이에 치여 하늘을 날던 순간, 내게 보인 것은 소소한 일상 속 사랑이었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 나는 후회했다.  '아, 이제 끝났구나. 오늘 사랑한다고 말할 것을...'


 다행히 눈을 떴고 하늘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구급차에 실렸다. 그 후로, 언제 또 사고를 당할지,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언젠가 들이닥칠 죽음을 이렇게나 준비 없이 무방비로 맞닥뜨릴 수 없다며 꾸역꾸역 유서를 썼다.


결혼을 한 이후 언제부터인가 나의 유서에는 내 멋대로 레시피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랑은 좋아하지 않으나 우리 아이들이 즐겨 찾는 음식들로 한 해 한 해 채워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토마토 마파두부 덮밥'이다.


웍에 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볶는다. 고기가 익을 즈음 썰어놓은 양파를 넣는다. 치 이익 소리와 함께 달아오른 기름이 양파로 인해 열기를 가라앉히는 동안, 미리 씻어 쪄 놓은 브로콜리를 투하한다. 단단히 견디던 브로콜리가 물컹물컹 항복을 해 올 즈음, 방울토마토 반 가른 것들을 집어넣는다. 토마토는 금세  하나 둘 껍질을 벗는다. 그때,  물 한 컵을 부어 자작자작 저어준다. 구수한 된장을 한 스푼 가득 담아 간을 맞추고, 두부를 넣는다. 냉장고 속에 가지나 버섯이 있을 경우, 함께 넣기도 한다. 된장찌개인 듯 아닌 듯 토속적인 향과 토마토의 달달함이 함께 전해질 무렵, 감자 전분을 물에 개어 살살 저어준다. 찰랑이던 국물이 질퍽질퍽해지며 끄덕여질 즈음이면 토마토 마파두부 덮밥은 완성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 위에, 마파두부를 곁 붓는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게 참기름을 조금 가미한 후, 깨를 뿌리면 완성!


어느 날 토마토가 없어서 토마토를 뺀 채 만든 적이 있는데, 딸아이가 아쉬워했다. "이 맛이 아니야. 토마토가 있어야 특유의 향과 달콤함이 전해지는데..." 그리하여, 유서에는 토마토라는 글씨 옆에 '반드시'라는 잔소리가 붙었다. 우리 딸이 아플 때면 생각나는 메뉴, 그리고 우리 아들은 김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라고 하는 메뉴. 그리고,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애정과 달리 해가 가도 이 맛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랑까지. 토마토 마파두부 덮밥은 어느 날 먼 미래에, 우리가 한창 함께 지지고 볶고 밥을 함께 먹으며 보낸 시간의 한편을 추억할 때, 단연코 가장 먼저 떠오를 메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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