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고요


가을이 온다. 나뭇잎들은 곧 있을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변신하기 위해 분주하겠지. 이 날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인내하며 견뎌왔을 숱한 날들, 비가 억수로 퍼붓기도 했고, 물 한 모금이 간절해 바싹바싹 마르기도 했고, 뜨거운 볕에도 매서운 추위도 견뎌내며 곧 있을 향연을 준비한다.

색색의 아름다움 안에 단 한 가지도 같은 색은 없다. 어제의 색이 오늘의 색이란 법도 없다. 아침의 색이 저녁의 색이란 법 역시 없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섬세히 변하는 그 아름다운 가을의 물결을 곧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짧은 순간이다. 이 순간이 길었으면... 바래도 본다. 하지만, 길어지면 마주하는 것은 마르고 비틀어진 빛바랜 낙엽뿐. 가장 아름다울 때 툭! 고리를 끊고 자신의 연고에서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뚝! 그 소리가 슬퍼 이 가을을 탔다.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못하고 그저 뚝. 담담히 떨어진 나뭇잎이 아쉬워, 바닥만 바라보며 발길에 차이는 나뭇잎을 골라내곤 했다.

친구들은 아름다운 이파리를 찾아 책갈피로 쓴다 코팅을 하였고, 나는 왠지 모르게 벌레 먹어 파이고 비틀어진 나뭇잎들을 모아 한 구석에 모아두었다. 아무도 잡지 않는 나뭇잎들. 책갈피로 오래오래 간직되지 못할 나뭇잎들. 그러나, 자신의 쓰임을 다하고 떨어진 그 이파리를 보고 있노라면, 주글주글해진 엄마의 손이 떠올랐다.

내가 잡던 엄마의 손은 매끈했고, 내가 기억하던 엄마의 향기는 핸드오일이 발라진 고소하고 향긋한 향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 보지 않고 지내온 시간, 그 사이 엄마의 손은 떨어진 낙엽처럼 바싹 마르고 비틀어지고 주글 거 린다. 벌레 먹은 나뭇잎처럼 검버섯도 나있고 점도 많아졌다. 아름답던 엄마의 손을 이렇게 만든 것은 세월이던가.


흘러갈 세월을 잡기 위해 시절을 기록했다. 이제 이야기를 읽으며 나에게는 이 가을의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와 달콤한 향이 전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주는 사랑보다 제게 천배쯤 더 큰 사랑을 주는 저희 첫째와, 내가 주는 사랑에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주는 저희 둘째에게 나는 하루하루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들로 인하여 내 안의 사랑을 충전하고 있음에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이다. 매 순간마다 아이의 눈빛과 마음을 지나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은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쓴 편지를 마지막으로 붙인다.




1. 초등학교에 책가방을 메고 간 안이를 보며.


사랑하는 안아. 오래도록 기다리던 우리 안이를 처음으로 갖고, 엄마의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던 우리 안이를 느끼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너를 처음 이 세상에서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우리 안이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아가야일까 상상하곤 했는데, 안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로 그 존재를 직접 만났을 때가 꿈만 같구나.


그때 우리 안이는 키위라고 불렸었는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우리 집안의 제일 첫 아가야로 모든 사랑과 예쁨을 받았는데. 어느덧 이렇게 자라서 혼자서 큰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씩씩하게 들어가는 초등학생 2학년 누나이자 언니가 되었네. 코로나로 인해, 그토록 궁금하고 가고 싶었던, 정말 말 그대로 꿈에서 그리던, 초등학교를 드디어 처음 등교하던 그날. 코, 잠든 네 모습을 보았어. 엄마도 모르게 울컥 감동의 눈물이 나더라. 키가 많이 컸지만, 잠이 든 모습은 여전히 아가 때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평온하게 잠든 우리 안이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감사했어.


아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마워.

이렇게 따뜻한 마음씨로 자라주어서 고마워.

엄마 아빠에게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부족할지 모르는 환경에서 듬뿍 행복해주어서 고마워.

그동안 네가 알게 모르게 겪었을 힘듦을 견디고 더욱 성장해줘서 고마워.

맛없는 반찬이지만 늘 맛있게 먹어주며, 엄마는 요리사를 외쳐주어서 고마워.

너도 어리지만, 너보다 어린 동생을 너무나 사랑해주어서 고마워.

엄마가 피곤할 때, 엄마 쉬라고 동생이랑 둘이서 알아서 잘 지내줘서 고마워.

엄마가 꾸미지 않아도, 늘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해주어서 고마워.

매일같이 우리 엄마가 엄마여서 너무 다행이라고 자기 전에 속삭여줘서 고마워.

엄마도, 우리 안이가 우리 딸이어서 정말 좋아. 정말 우리 안이가 우리 딸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렇지?


안아, 늦었지만, 우리 안이의 입학을 축하해. 아홉 살의 예쁜 안이는 코로나라는 이 얄궂은 이 상황 속에서도 누구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고 알차게 생활했던 것을 엄마는 알아. 2학년 때는 다행히 안이의 바람대로 매일 등교할 수 있어서 엄마 역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우리 안이가 더 많이 성장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멋진 아이로 자랄 거라고 엄마는 믿어. 안아, 그동안 엄마 곁에서 한결같이 큰 사랑을 보내주어서 정말 고마워. 엄마도, 아빠도, 호도, 우리 가족 모두, 우리 안이의 삶 속에서 언제나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줄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게만 그리고 행복하게만 지내다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더 많이 경쟁하고 더 많이 쟁취하고 더 많이 무언가를 잘해야 할 것 같은 구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아직도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천천히 가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끼는 것들도 많은 것 같아. 우리 안이가 살아갈 안이 속 세상도 그러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우리 안이를 믿어. 우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즐거운 생활 오래오래 함께 누리자. 초등학생이 됨을 축하해, 이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딸. 영원한 우리 아가. 우리 안이. 엄마가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해요.


우리 안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2. 언제나 엄마의 비타민, 우리 호에게


호야, 그러고 보니 우리 호에게 편지를 써준지가 꽤나 오래되었네. 우리 멋진 호가 여섯 살이 되고 얼마나 더 씩씩해지고 멋져졌는지 엄마가 도저히 편지로 남기지 않을 수가 없구나. 나중에 우리 지호가 글을 읽을 수 있고, 더 크면, 엄마가 써놓았던 편지들 차근차근 풀어서 모아줄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엄마는 호를 보면, 마음이 참으로 따뜻해져. 우리 호는 어쩌면 그렇게 사랑이 많고 배려가 많은지, 호가 생각해주는 마음을 보며 오히려 엄마는 정말 우리 아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단다.


고마워 호야. 엄마한테 태어나줘서 고마워.

고마워 호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워.

엄마가 해준 맛없는 밥도 언제나 엄지 척, 들어주고 최고!라고 말해주어 고마워.

어디서 늘 물려받은 옷들만 입혀도, 항상 내 옷이 젤 좋아. 하고 말해주어 고마워.

엄마가 안된다고 이야기한 것들, 언제나 잘 들어주어 고마워.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와락 안아주고 비벼주고 뽀뽀해주어 정말 고마워.

아직도 엄마에게 찰떡같이 잘 안겨주어서 고마워.

엄마가 호 데리고 많이 다니지 않아도 항상 있는 거로 만족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엄마가 아플 때 아프지 말라고 기도해주고, 호~해줘서 고마워.

호가 씩씩하게 유치원 잘 가주고, 선생님께 칭찬 많이 많이 받아주어서 고마워.

엄마는 호가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야.


전에 우리 호가 그랬지? 집에 들어온 달팽이를 보고 누나가 키운다고 달팽이 집을 만들어주었는데, 갑자기 우리 호가, " 엄마, 우리 이 달팽이 놓아주자. 원래 집에 보내주자. 달팽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면 어떡해." 하더니 눈물을 보인 거야. 호는 그렇게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 엄마가 정말 따뜻해져. 엄마가 삶을 살며 가끔씩 가슴이 메말라버릴 때도, 호를 안으면 다시 따뜻해져. 우리 호의 이 따뜻함이 얼마나 큰 장점인지, 너는 알까?


코로나로 우리 모두가 조금씩 두렵고 힘든 이 시기를 지내며, 매일같이 하루를 마칠 때, 이렇게 우리 가족이 함께여서, 건강하게 하루를 또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고 엄마가 하느님한테 매일 기도하고 있어. 그러니 호야, 걱정 많이 하지 말고 즐겁게 행복하게 잘 지내렴. 좋아하는 유치원 씩씩하게 잘 다니고, 지금처럼 밝고 사랑스러운 귀염둥이 호로 하루하루 건강하게 자라주렴.


우리 호가 이렇게 잘 커줘서, 이렇게 원을 잘 다녀줘서, 엄마는 정말 대견스러워. 정말 고맙다. 호는 엄마의 비타민, 우리 호를 안고 있을 시간만큼은, 지금이 코로나 시기인지를 모두 다 잊게 만드는 매력의 사나이 우리 아들이야.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금처럼 환히 웃으며, 따뜻한 그 마음 간직하며, 잘 자라렴. 엄마가 사랑해 호야.


우리 호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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