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를 멋이라 생각했던 나의 20대 시절, 표현에 서툰 남편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사랑한다. 고맙다. 예쁘다'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가사처럼 매일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낯간지러운 표현 같은 건 나와 상극이니까. 하지만 10년을 같이 살아보니 나도 이제 다정한 남자가 좋다. 이젠 너무 익숙해져,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보이지 않아도 바람이 불면 느껴지듯, 나도 남편의 관심과 대화가 바람처럼 불어오길 바랐나 보다.
남편은 코로나19로 인해 근무형태가 바뀌어 평일에 이틀을 쉬게 됐다. 유급휴가라도 받은 기분인지 한 손엔 리모컨 다른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은 마치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 같았다. 우리의 시선은 밥을 먹을 때도 TV에 고정되어 있었고 대화 주제 또한 연예인 아니면 TV내용뿐이었다. 서로의 감정이나 관심사에 대한 대화는 쉼이 필요한 남편에게 그저 사회생활의 연장같은 스트레스가 될뿐일까.
"우리 내일 카페 갈래?"
SNS에서 봐두었던 예쁜 카페를 보여주었다. 남편의 꿀 같은 방학을 빼앗은 기분이 들어 미안했지만 나에게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옷장을 열었다. 잠옷이라 칭하지만 당장 헌 옷수거함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옷을 벗고 한껏 멋을 부렸다. 오픈 시간에 맞춰왔더니 내가 원하던 창가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왜 울어??"
"난 결혼생활이 외로워. 우린 표현도 없고 대화도 없잖아."
매일의 표현도 관심도 생일선물이 없어도 괜찮았던 이유는 남편이 생일마다 써준 편지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1년 치의 사랑과 관심과 고마움이 가득 들어있었다. 하지만 생일마다 써주던 남편의 편지를 받지 못한 지 3년째다.
"우리 대화 많이 하잖아. 나는 우리가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
"TV얘기가 대화냐?? 나도 이제 다정한 남자가 좋아." 나는 사탕이라도 뺏긴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남편이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을까.(지금 생각하니 이불킥감이다.) 온전한 나의 속마음을 말하고 나니 벌거벗은 것처럼 창피하고 민망했지만 동시에 맑은 얼음을 입에 넣은 것처럼 마음속 시원함을 느꼈다.
지금도 어김없이 일주일마다 남편의 꿀 같은 방학이 돌아온다. 하지만 화요일이면 으레 우린 카페로 향한다. 내 생일마다 주던 편지는 이제 없다. 그래도 괜찮다. 화요일마다 나를 위해 예쁜 카페를 찾아 데리고 가주는 것이 무뚝뚝한 남편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 생활은 길고 긴 대화 같은 것이다.
결혼 생활에서는 다른 모든 것은 변화해 가지만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화에 속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