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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Mar 29. 2021

150원 내고 타는 기차

미얀마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양곤순환열차

미얀마의 양곤에는 '양곤순환열차'가 있다. 서울지하철2호선처럼 양곤을 빙글빙글 돌며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는 기차인데, 우리돈으로 150원 쯤 내면 어느 역이든 갈 수 있다. 물론, 그냥 탄 채로 빙글빙글 돌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사실 미얀마 도착한 다음날 삽질을 한번 했다.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교외를 다녀왔다. 그래서, 양곤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그냥 좀 쉬고 기차는 다음에 타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새벽 네시 반이었다. 고작 세시간도 못잤는데 이 무슨... 잠이 깬 건 억울했지만, 역시 가봐야 하나, 아니 피곤한데 그냥 이대로 뭉갤까, 안가면 후회하겠지, 다시는 못올 수도 있잖아, 짧은 고민을 마치고 억지로 일어났다. 피로는 하나도 풀리지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기운 정도는 있었다. 카메라를 챙겨 택시를 불렀다. 양곤중앙역으로 가주세요. 구글링으로 찾아낸 시간표를 확인하고 여섯시 십분 출발하는 양곤순환열차를 타러 갔다. 

식민시절 지어진 양곤역은 규모가 제법 크다. 미얀마 전통가옥 형태의 지붕을 현대적인 건물이 떠받치고 있는데, 제법 운치있는 모습이다.

두번째 양곤역이었다. 헤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거침없이 7번 플랫폼을 찾아 육교를 건너갔다.

육교 위에서 노선도를 발견했다. 닭대가리, 대체 저 그림을 왜 못본거냐, 왜 멀쩡한 그림을 놔두고 교외선을 탄거냐, 머리를 쥐어뜯으며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조도 낮은 전등이 켜진 창구에서 표를 샀다. 양곤순환열차 1장이요. 창구 직원은 시계를 흘깃 보더니, 일곱시 사십오분 기차네요. 이따 다시오세요. 담담하게 얘기했다. 헐? 시계를 보니 두시간이나 남아있었다. 허허허. 어찌 이런 일이. 내가 허허허, 웃자 창구 직원도 허허허, 웃으며 뒤를 가리켰다. 저 뒤에 의자가 있군요.


단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구나, 허탈해서 의자에 앉아있다가, 그래 역 구경이나 하자, 언제 또 차근차근 보겠나 싶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플랫폼에서 양치하는 사람도 구경하고, 열차에서 뛰어내려 철로를 점령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떠나보내는 사람, 돌아온 사람도 구경하고 플랫폼 제일 끝에 자리한 화장실도 구경했다. (사용해보지는 않았다.) 기차의 종류가 정말 다양했는데, 일본에서 온 기차가 많은 것 같았고, 우리 기차도 보였다. 저건 통일호네.

정신 없이 구경하다보니 열차시간이 됐다. 다시 창구로 찾아가니 아까 그 직원이 싱긋 웃으며 표를 내줬다. 그러면서 자기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뒤에 와있죠? 저겁니다. 손가락을 따라 멀리 바라보니 JR이었다. 와, 이게 양곤순환열차였구나. 지난번에 왔을때 플랫폼을 떠나던 그 열차였다. 난 대체 왜 JR과 기차를 헷갈린거지? 역시 닭대가리인가? 딱 봐도 이건 전철이고 교외선은 기차였잖아. 

한숨을 쉬고 열차에 오르려고 보니 제법 높았다. 플랫폼과 바닥의 높이를 맞추지 않다보니 상당한 높이의 전철에 사람들이 (말 그대로) 기어올랐다. 신기한 장면이었다. 

열차 안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으로 가득했다. 우리의 시골 기차를 탄 것 같기도 하고, 어릴적 기차를 타고 놀러가던 때도 생각이 났다. 저마다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이러저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새벽부터 또 한바탕 삽질을 한 탓인지 슬금슬금 졸리기 시작했다. 잠깐 존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열차는 시장으로 변해있었다. 수많은 상인들이 역마다 기차를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어볼까, 세번째 역에서 탄 빵장수 아주머니께 크림빵을 샀다. 달콤한 크림에 소금이 들어간 신기한 맛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강력한 포스를 풍기는 노란 옷의 여자분이 머리에는 쟁반, 손목에는 목욕탕의자를 끼고 나타났다.

뭐지, 쳐다보고 있으니 한쪽에 목욕탕의자를 내려놓고 아예 국수집을 차렸다. 헐. 입을 못다물고 쳐다보니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씨익 웃었다. 저 국수는 먹어야 돼, 안먹으면 말이 안돼, 홀린듯 다가가 국수를 달라고 하는데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매뉴가 하나가 아닌가? 말이 안통해서 어버버하고 있으니 옆자리 아주머니가 다가와 미얀마어(!)로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대충 이런거다. 여자분이 미얀마어로 얘기를 하면, 아주머니가 미얀마어로 나한테 얘기하고(대체 왜?), 그럼 난 영어로 아주머니한테 얘기하고, 아주머니는 다시 미얀마어로 여자분에게 얘기를 전해줬다. 아주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어쩐지 뜻이 통했다. 셋 다 만족하는 표정으로 돈을 내고 국수를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국수가 무척 맛있어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으니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같이 씨익 웃어줬다.

다음 역에서는 온갖 농산물을 짊어진 상인들이 잔뜩 올라탔다. 옥수수와 감자, 호박이 가득 든 푸대로 열차가 채워졌다. 한 아주머니는 아예 내 옆에 감자  푸대를 내려놓더니 나한테 붙잡고 있으라고 미션을 주셨다. 네, 그럼요, 제가 또 감자 푸대를 붙잡고 있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감자 푸대를 두 팔로 껴안으니 사람들이 우하하 웃었다.

가치담배 상인이 열차에 올랐다. 객차에는 금연이라고 써있었지만, 그러던 말던 담배 상인은 사람들에게 불을 붙여줬다. 젊은이는 문앞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열차 안으로 느릿느릿 담배 연기가 돌아다녔다. 담배 연기 사이로 노스님이 탁발을 했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셔서 얼떨결에 합장을 했다. 담배 연기와 함께, 나른하고 향긋한 순간이었다.

세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열차는 양곤역으로 돌아왔다. 아, 내리지 말까, 그냥 이대로 두어바퀴 더 돌까, 잠깐 고민하는데 문앞에 앉은 모녀가 보였다. 짐이 제법 많아 보였다. 

눈인사를 하고 짐을 나눠들었다. 아이 엄마가 활짝 웃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열차가 떠난 뒤에도 아쉬워 플랫폼을 서성였다. 언젠가 돌아올 수 있겠지, 그날은 하루 종일 타야겠다, 생각했다.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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