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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Oct 28. 2022

바간에서는 전기바이크를 타야한다

미얀마 바간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과 민폐에 관한 이야기

바간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으로 꼽힌다. 서울 강서구 정도의 크기지만 2,227개의 불탑과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중교통망이 없다시피 하다. 바간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기바이크를 타는 거에요. 미얀마 사람들도 바간에서는 전기바이크를 타요. 언젠가 미얀마인 유학생 슈웨씨가 했던 말이다. 그러니 바간에서는 전기바이크를 타야한다.


야간버스를 타고 바간에 도착한 아침, 호텔 리셉션의 직원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얼리 체크인은 안된다고 심드렁하게 얘기하더니, 짐을 맡아달라고 하자 프런트 맞은 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끝이었다. 레터에도 답장을 안하더니, 확실히 도움을 주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하나만 더. 전기바이크를 빌리려고 하는데.

직원은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더니 사무실에서 코팅된 명함이 붙은 키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호텔 문 앞까지 따라나와 열정적인 태도로 마을 쪽을 가리켰다.

이걸 가지고 저쪽에 있는 바이크샵에 가세요.

이상한 부분에서 친절하군. 고개를 갸웃하고 바이크샵으로 향했다.


잠이 덜 깬 표정의 주인아주머니는 내 키를 보더니 늘어선 전기바이크 중 가장 깨끗한 놈을 꺼내주셨다. 사실 바이크를 타본 적이 없다. 그냥 모터 달린 자전거겠지 생각하고 간 것인데, 막상 앉고 보니 작동법을 알 수 없었다. 멋적은 표정으로 이거 어떻게 해야 움직여요? 물어보자 아주머니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이녀석 초보구나. 아무 말없이 깨끗한 바이크를 뺏더니 가장 낡아보이는 바이크를 꺼내주셨다.

이게 전원, 이게 엑셀러레이터, 이게 브레이크, 전조등은 이렇게 켜고, 깜빡이는 이렇게, 오케이?

오케이.

아주머니는 내가 휘청휘청하는 걸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골목끝까지 가는데 두번쯤 넘어질뻔 하고나서야 운전이 몸에 익었다. 구글맵을 확인하고 올드바간으로 이어지는 길로 향했다.


2번국도에 들어섰다. 이라와디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몇개의 마을을 거치며 냥우로 향해있었다. 도로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패인 자국이 있었고, 대충 보수된 탓에 울퉁불퉁한데다 마른 모래까지 덮여있어 미끄러웠다. 가드레일이 없다보니 방심하다가는 풀숲으로 돌진하기 일쑤였다. 다행이라면 전기바이크의 최고속도가 40km/h 인 탓에 어차피 밟지 못한다는 정도였다. 빠르게 추월해가는 차들에 본의 아닌 양보를 반복했다.


다행히 바이크에는 곧 익숙해졌다. 두어개의 파고다에 들렀다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과격하지 않은 코너링 정도는 가능해졌다. 재미있기도 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는게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바이크로 달릴때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슈웨산도와 담마얀지, 일몰언덕과 올드바간의 파고다군을 헤매다 해질 시간에 맞춰 난민타워로 향했다. 열기구는 시즌이 아니고, 몇몇 유명한 일몰 파고다는 올라갈 수 없다보니 높이 솟은 난민타워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난민타워는 올드바간 전체가 보일만큼 높이-쌩뚱맞게 솟은 전망대다.) 타워에 올라 해지기를 기다리는데, 오후까지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꼈다. 일몰은 고사하고 풍경도 잘 보이지 않아 낙심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이크를 몰아 2번국도에 들어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숙소 방향으로는 더 두꺼운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헐. 길가를 둘러봤지만 비를 피할 곳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까지 서두르자 싶어 엑셀러레이터를 당기는데,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배터리 로우. 헐. 배터리 게이지는 20%를 가리키더니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바이크의 속도도 그에 따라 줄어들더니 시속 10km 까지 떨어졌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는데, 이대로 멈추면 아주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칠 때 쯤. 작은 마을의 바이크샵을 발견했다. 샵에는 젊은 아가씨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배터리가 떨어졌어요. 도와주세요. 애걸을 하자 친절하고 전능하신 아가씨께서 내 바이크샵에 전화를 해주셨다. 불과 15분도 안돼서 나타난 점원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새 바이크를 건네주고는 내 바이크를 가져갔다. 저걸 어쩌려는거지, 궁금해하는데 선뜻 올라타더니 시속 10km로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헐. 저 속도로 간다고? 가다가 배터리가 떨어지면? 비가 올텐데? 황당해서 쳐다보다가, 아, 나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도 빨리 가야지, 출발했지만, 역시나 폭우를 만났다. 그것도 2번국도 한가운데서.


미얀마의 폭우는 대단했다. '가시거리 1m'가 농담이 아니었다. 흔히 샤워라고 부르는 수준의 폭우가 끊임없이 내렸다. 스콜이 아니었다. 상향등을 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2번국도를 달리는데,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도로의 가로등이 모두 꺼져버렸다. 하하... 간신히 띄엄띄엄 보이던 도로와 숲의 경계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후 휴대폰의 네트워크도 먹통이 됐다. 구글맵이 작동을 멈췄다. 하하... 에라 모르겠다, 감각과 짐작만으로 도로를 달렸지만, 결국 호텔 근처까지 두시간 여, 마을을 네 바퀴나 돈 후에야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호텔에 들어서자 우와, 이 빗속을? 이라는 표정의 프런트맨이 수건을 건네줬다.


다음날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맑은 하늘이었다. 비를 그렇게 많이 맞았는데도 별로 나빠지지 않은 컨디션에 신기해하며 바이크에 시동을 거는데 배터리 경고등이 들어왔다. 어제의 폭우 탓인가, 전기 장비는 불편하군, 바퀴를 질질 끌며 바이크샵으로 갔다. 배터리가 없어요. 주인아주머니는 다행히 내 얼굴을 못알아보는 것 같았다. 흔쾌히 바이크를 꺼내주시는데, 어제 아침에 봤던 가장 깨끗한 바이크였다. 우와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눈치를 채기 전 바이크를 타고 2번국도로 내뺐다.


대충 이틀뿐인 일정이지만 대충 둘러볼 생각은 없었다. 바이크를 타고 구글맵에 표시해둔 사원과 파고다를 꼼꼼히 짚어나갔다. 나가욘 사원, 마누하 사원, 밍갈라제디 파고다, 슈웨구지와 짯빈뉴를 돌아보고 이라와디강을 볼 수 있는 부파야파고다를 지나 아난다사원까지 갔다. 마지막은 일몰언덕에서 보내기로 했다. 어제 못본 일몰을 혹시라도 볼까 싶었고, 난민타워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언덕에 올라 드론을 띄웠지만, 기대했던 만큼 훌륭한 일몰은 아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구름 덕에 극단적인 색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붉어지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위로받는 것 같았다. 결국 바간의 일몰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구나, 다시 와야겠구나 생각했다.


해가 진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가로등이고 뭐고 없는 길을 따라 조심스레 바이크를 모는데, 갑자기 펑, 뒷바퀴 타이어가 펑크나버렸다. 헐. 이걸 어쩌나, 억지로 타다 끌다 하면서 2번국도까지는 나왔는데, 조금 달리려하면 여지없이 넘어져버렸다. 이러다가 아무래도 사고나겠다 싶어서 키에 붙은 명함을 보고 샵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샵에서는 상대가 누구인지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네, 접니다. 바이크 두 대 해먹은 그놈이 방금 한대 더 해먹었습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알려주니 20분 쯤 지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배터리 나갔다면서? 어, 아냐, 타이어 펑크야. 어? 배터리라고 했잖아. 아냐, 타이어라고 했어. (배터리와 타이어가 발음이 비슷한가?) 어... 그럼 우리 아버지를 부를게. 좀 있어봐. 젊은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다시 기다리자 이번에는 나이든 남자가 나타났다. 타이어가 펑크났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일단 이걸 타고 가시죠. 나이든 남자는 타고 온 바이크를 내주더니 펑크난 내 바이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걸 어째야 하나라는 표정이었다. 매우 미안하고 난처해져서 허둥지둥 인사한 뒤 숙소로 향했다. 결국 네대째의 바이크였다. 이틀만에 네대라니, 참 요란하게 됐군. 한숨이 나왔다.


바간에 가는 사람에게는 역시나 바이크를 추천할 생각이다. 바간에서는 바이크가 제격이고, 문제가 생기면 얼마든지 교체해준다는 것도 알려줘야겠다. 다만, 나처럼 하루에 두대꼴로 바이크를 바꾸는 민폐는 끼치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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