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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ug 18. 2024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혼자 여행해서 혼여행이 아닙니다


 내가 혼자 여행을 가면, 친구들은 항상 잘 지내는지, 그곳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 지 물어본다. 그동안 방문했던 많은 여행지에선,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친구들에게 알려줬다면, 이번엔 내가 얼마나 불만족스러운지 털어놓게 되었다. 이렇게해서라도 이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문제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말할 수록 친구들의 걱정은 심해져갔고, 때론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불만은 접어두고, 혼자 이 아름다운 곳을 누벼보라고 했다. 어느 누군가에겐 너의 여행은 꿈같은 시간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시간에 나를 위한 시간을 더 가져보라고 했다.


르모흔 해돋이 하이킹을 다녀온 뒤, 나는 친구들이 해준 여러 조언들을 생각하면서, 잠시 낮잠에 들었다. 무엇이 나에게 가장 성장할 수 있는 선택일까. 고민했다.


등산이 생각보다 고되었는지, 나는 오후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오후 2시면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울해..’


 가고 싶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침대에만 있고 싶었다.

여행은 꼴랑 3주인데, 하루를 이렇게 써야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또 혼자고, 혼자여도 누군가와 이야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끝날지를 7일동안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뒤척이다가 다시 한번 잠이 들었다.


부스럭 부스럭


내가 살고 있는 층에 들릴 수가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돌아다니고, 짐을 푸는 소리가 났다. 2024년에 유행하는 팝송이 들려왔다. 그제서야 호스트의 문자가 생각났다. 누군가가 온다더니 드디어 온 모양이다. 제발 이번은 나와 맞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그래도 기대하지 말아야했다.


문을 살짝 열고, 부시시한 얼굴로 새로운 사람과 인사하러 나갔다. 여자였다. 동그랗고 큰 눈에 앳된 얼굴, 예쁜 금발을 가진 사람이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어머, 미안해!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노래를 너무 크게 들은 것 같아. 안녕 나는 자스민이야.”


“안녕! 나는 지인이야. 만나서 반가워. 오늘 아침에 하이킹을 다녀왔는데, 조금 무리한 모양이야. 노래 마음에 들어. 모닝콜로 딱이었어.”


우리는 간단한 소개를 했다. 그녀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아! 내가 이제까지 묶었던 숙소들은 부엌이 없었거든. 여긴 파라다이스야! 이제서야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신나.”


그녀는 신나서 재잘거렸다. 얼마만에 듣는 소리인지. 나는 눈물나도록 반가웠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깊은 관계도 아니었고, 이런 간단한 대화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 숙소의 장점들 중의 하나이지. 넓은 주방과 좋은 뷰, 그리고 이렇게 함께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까지 완벽해.”


“맞아! 내가 묶었던 숙소들은 사람들이 불친절했어. 여기에서 1주일이나 지냈는데, 아무도 못만났는데, 너랑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있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은 것 같아.”


눈이 딱 뜨였다. 그 한마디에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실은 나도 그래.. 너가 처음으로 대화라고 할 수 있는 대화를 사람이야. 하하하”


자스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녀도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우린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국사람이었고, 모리셔스 옆 마다가스카르에 일을 하러 가기 전, 비자문제로 모리셔스에 2주간 머무르고 있었다. 여행 중이었던 나와 다르게, 그녀에게 모리셔스는 마다가스카르를 가기 위한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없어도 많은 곳을 여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내일 계획 있어?”


“글쎄 없는데, 내일 같이 여행 갈래?”


“좋아! 각자 가고 싶은 곳 말해볼까?“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한 대화는 저녁 11시가 다 되서야 끝이 났다.


결국은 사람이었다.

혼자 여행은 오로지 모든 것을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을 뿐이다.


 혼여행은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인생을 듣고, 내 인생도 공유하며, 그렇게 서로의 시간 속에 녹아든다.  노력한다고, 억지로 해본다고 해도, 안될 인연은 안된다. 내가 대화를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먼저 말을 걸어오고, 대화할 마음만 열려있다면, 찾아올 인연은 찾아온다.



그렇게 나는 자스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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