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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pr 23. 2024

수채화처럼 살고 싶어

  다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두 달 전입니다. 온라인 공간 중 이곳을 가장 사랑하지만 사는 게 먼저라 흔해빠진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로는 수시로 '써야지, 써야지'라는 주문을 외워 보았네요. 그러나 생명이 없는 무생물 앞에서는 일단 사는 게 먼저입니다. 바빴던 겨울 방학이 지나면 봄이 올 줄 알았는데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더 정신없는 3월을 보냈고 다시 4월의 봄을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창 밖의 풍경보다 머릿속은 온통 일(work)로 가득합니다. 어떤 날은 몸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잠을 자고 다른 쪽은 밤새 생각을 하는 반쪽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즐겁게, 시인의 말처럼 소풍을 온 듯 살고 싶은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저는 여전히 두꺼운 옷을 입고 사는 것 같습니다. 수채화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은데, 생각이 많아진 요즘은 자꾸만 덧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유화처럼 두꺼워진 마음을 이고 하루를 살게 됩니다. 생각의 대부분은 일을 하며 만나는 어린이들과 앞으로의 방향에 관한 것이지만 가끔은 삶에 대해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 제 삶이 어느 위치에 와있는지 정확한 좌표를 찍을 수는 없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인간관계와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을 느낄 때면 중요한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끝은 있나요?'

  그러게요. 사람들의 고민은 언제 끝이 날까요? 적어도 제가 아는 50대, 60대의 인생 선배들도 고민은 늘 있더라고요. 그들도 여전히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다치기도 하더라고요. 오히려 사회초년생인 20대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아주 진지하게 했더라면 지금은 고민이 없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도 조그만 고민 하나 없이 지나는 때는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면 지금 제가 하는 고민은 때가 되면 소리는 내는 배꼽시계처럼 때가 되어 두드리는 마음의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임무라는 생각도 요즘 들어 자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하는 일 중에서 제가 가장 꾸준히 사랑하는 것은 밥을 먹는 일입니다. 요즘 쌀은 워낙 밥맛이 좋은 품종이 많지만 품종에 개의치 않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먹어도 좋은 것이 밥입니다. 그래서 살면서 밥이 질렸던 적이 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내 딱 한 번 엄마의 밥이 질렸던 어느 날 아침을 기억해 냈습니다. 살면서 딱 한 번이라니 '나의 인내심도 어마어마하구나'라는 자찬을 하며 더 자세히 떠올려보니 그때는 중학교 1학년 때쯤인 것 같아요. 그 무렵에 유독 입맛이 툭 떨어지는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하필 그 맘 때쯤 엄마의 손맛이 집을 잠시 떠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일 먹는 밥도 질리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일을 시작한 지 만 2년이 지난 지금에 서봅니다. 감사하며 살지만 순한 맛들로 반복되는 일상이 그때의 밥처럼 무미(無味)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이해를 가져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제야 마음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사춘기행(行) 열차를 기다리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처럼 올 것이 왔다는 것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게다가 다들 겪고 지나가는 보편적인 고민이라는 주변 인물들의 조언은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했고, 정성껏 하루를 살아놓고 요즘처럼 입맛을 잃은 날에는 그간의 업적을 모조리 찌그러트립니다. 그것도 스스로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먹은 날입니다. 다시 글을 쓰며 잠시 꺼두었던 유머 감각에 심폐소생술을 해야겠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때로는 두려운 일이지만 가벼운 한 방울의 물감이 순식간에 종이 위로 번지듯 글을 통해 저의 일상에도 다시 미소가 퍼지게 해야겠습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하며 운동도 다시 시작합니다. 참 좋았는데 아쉽게 끝이 났던 요가 수업을 대신할 새로운 요가 수업에 화요일마다 가기로 했어요. 쉬다 보니 요가도 거의 1년 만인데 걱정보다는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나무 막대기 같은 모습으로 접고 꺾고 난리부르스를 칠 제 모습이 아니라 요가 수업 후 흘린 달콤한 땀방울이 떠오릅니다.

  4월이 되니 지고 피는 꽃들이 화단에 가득합니다. 누군가는 꽃망울을 먼저 볼 것이고 누군가는 떨어진 꽃잎을 보고 생각에 잠기겠지요. 감정이 아니라 그곳에 풀 하나가 있다는 것과 지난 사계절을 지켜낸 나무 한 그루가 올해도 인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나의 가치와 살아가는 의미에 생기(生氣)가 스며들게 해야겠습니다. 이제 생각을 종이에 덜며 가벼운 마음으로 폴짝 뛰어야 하는 봄이 왔습니다.

  



  다정한 독자님, 정말 잘 지내셨나요? 저는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제목 사진은 이제는 막을 내린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앙리 마티스와 라울 뒤피> 전에서 본 작품의 일부입니다.

  

  특히 라울 뒤피의 수채화는 밝고 경쾌해서 더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살고 계시는 곳에 라울 뒤피의 작품이 전시된다면 꼭 찾아가 보시길 추천드려요.


  오랜만에 요가 수업을 갈 생각을 하니 예전에 쓴 글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어요.

  02화 요가를 등록했는데 (brunch.co.kr)

  이번에는 물욕을 버리고 마음을 닦아야겠습니다.

  요가 수업을 다녀온 후기는 (아마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거 같아요.

  애월에 있는 요가원인데 벌써 기대가 됩니다.

  "그대 나의 반려 운동이 되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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