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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ug 06. 2024

제주로 오세요, 서울로 갈게요 (2)

제주에 사는 무지개인간은 지금 서울 여행 중입니다.
서울 여행 2일 차, 더워도 너무 덥네요.



진짜 여행은 둘째 날부터라고 생각해 @무지개인간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눈을 뜨자마자 먹는 조식의 즐거움이지요. 하지만 늦잠은 금물입니다. 아침 식사 당번에서는 제외되더라도 조식 마감 시간에서는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조식 마감 시간은 생각보다 빠릅니다. 9시 30분. 보통의 주말이면 이제 아침을 먹어볼까,라며 슬슬 메뉴를 짜내고 있을 시간인데 환복 후 식당으로 쨉 싸게 이동도 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좋은 자리-창가-에 앉고 싶어서이지요. 이번에 머문 숙소는 롯데호텔의 새 브랜드인 L7 명동입니다. 목적지를 정한 뒤 왕복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정하고, 갈 곳을 정했더니 동선이 너무 복잡해져서 방문할 곳을 정리한 뒤 숙소를 새로 잡았습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준비 과정은 서툴렀지만 막상 둘째 날이 되니 삼성역에 호텔을 잡은 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낫습니다.



  한 주가 시작되었고, 오늘 아침만 해도 출근길 지하철은 무척 붐볐을 텐데 호텔 안에 있을 때는 세상 모든 사람이 여행 중인 것처럼 시간이 멈춰 있었네요. 그래도 늦은 새벽까지도 불이 꺼지지 않았던 한 빌딩을 떠올리니 다른 이들의 바쁜 일상에 여행을 왔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오늘 일정은 바쁩니다. 호텔방을 나서기 전까지 스케줄을 다시 조율해 둘째 날의 첫 일정은 서소문성지에서 시작합니다. 조선시대에 소의문이라고도 불렸던 서소문은 한양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상업 활동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라 일벌백계(한 사람을 벌하여 백 사람을 경계함)가 가능해 국가의 공식 처형지로 이용되기도 했지요. 특히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을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에 대한 처형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화~일요일에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립니다.



  점심은 먹으러 간 곳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근처에 있는 한옥 브런치 식당입니다. 예약을 할까 하다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넘긴 시간이라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땡볕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재바른 제 손가락은 왜 오늘따라 여유를 부렸는지요. 그래도 서울 사람들은 참 친절합니다. 1시간을 기다려도 메뉴판을 가져다주는 친절한 말투에 불평은 사르르 다 녹아버렸습니다. 게다가 모든 메뉴가 다 맛있고 근사했습니다. 너무 더워 무알콜 맥주도 한 잔 했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틈만 나면 충전을 좀 하느라 핸드폰 밥부터 챙기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숙소로 못 돌아갈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사진이 없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쉽습니다. 맛있는 것은 눈으로라도 또 먹고 싶은데 말이지요.


 

  이제 뚜벅뚜벅 걸어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갑니다. 독립밀방에서 서대문 형무소는 코앞이라 더워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나저나 날씨가 참으로 덥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일기 예보에 비, 비, 비가 예상되어 비가 내리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막상 여행을 오니 비가 내리지 않아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더워도 너무 덥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휴가 때 읽으려고 가져온 양귀자 작가님의 책 속 문장이 떠오릅니다.


  다시 여름이 오고, 태양이 달구어지고, 파도 소리가 귀에 아슴푸레 잡히는 요즈음엔 새삼 이 건망증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고생만 실컷 했어. 역시 집이 제일 시원하고 편해."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오면 지난해의 일은 까맣게 잊고(......)

  - 양귀자, <양귀자의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 1995


  그렇습니다. 지난해의 일은 까맣게 잊고 이 여름에 태양에 맞서 헥헥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서울이 이렇게 더우면 제주에 있는 우리 집은 덥고 습하기까지 할 텐데, 몹시 피곤하다는 이유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온, 휴가를 떠나기 전 게으름을 피운 제 모습이 후회가 됩니다. 집 앞이면 얼른 뛰어가서 정리를 해놓고 다시 나올 텐데 지금은 방법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에라,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잊어버린 채로 눈에 보이는 것을 즐기는 게 더 지혜롭겠지요. 하지만 걱정은 꼬리를 물며 나타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려줍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걱정과 싸우며 인내의 땡볕 걷기로 드디어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다가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식민지 근대 감옥입니다. 이곳에 역사적 의의가 더해진 안타까운 일은 해방 이후, 형무소는 없어지지 않고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꿔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전시는 대체적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취조실과 옥사, 형무소의 의식주 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더위가 싹 가십니다. 옥고를 치르면서도 강한 눈빛과 독립의 정신을 지켜낸 독립운동가들 앞에서 현실의 불평은 모두 삼킨 채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특히 그 실상이 너무나 마음이 아파 사진으로도 찍지 못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심훈 소설가는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에서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라며 당시의 옥중 생활을 알렸고, 김광석 시인의 <나의 옥창일기>에서도 공장에서 노역까지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옥중 생활 중 당시의 상황을 덤덤하게 써놓은 것으로 읽기에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있어서 고마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춘기가 고른 코스였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이곳을 둘러본 춘기는 그날 밤, 무섭다며 '엄마 옆에서' 자겠다고 하더라고요. 역사 속 인물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좋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춘기에는 언제나 안전한 쉼터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를 나와서도 마음이 여전히 무거워 숙소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저녁에는 돌담길이 예쁜 덕수궁 야간 해설을 신청해 놓았는데,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무거워 돌담길을 걸을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잠깐의 멈춤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네요. 저녁 여섯 시쯤 퇴근 인파와 함께 덕수궁으로 갔습니다. 다시 씩씩하게 걸어서 말이죠. 덕수궁은 조선 후기, 대한제국의 역사에 대해 미리 역사 자료를 찾아보고 온다면 더 즐거운 관람이 될 것 같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에 감탄만 했을 텐데 지난겨울에 한국사 공부를 다시 했던 터라 해설사 님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들렸거든요.



  온전한 여행의 날, 아침에는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벌써 아쉬운 마지막 밤을 맞이했습니다. 창 밖의 풍경을 가득가득 담아두고 싶은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일상을 살다 보며 어쩔 수 없이 잊히기도 하겠죠. 그래서 여행은 수시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나 봅니다. 흥겨운 기록이 오래 각인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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