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퇴사, 자만심이 청구한 계산서

자유라는 환상, 그리고 바닥난 잔고

by 억대연봉파파

나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있었다.

직장을 다니며 사업체를 키워

매각까지 해봤다는 그 경험.


그것이 나에게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0에서 1을 만들 수 있다"는 위험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서도,

당장의 수익 모델도 없었다.

믿은 건 오직 내 '감'과 엑시트 경험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사장 타이틀과 억대 연봉을

미련 없이 걷어차고 야생으로 나왔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명백한 오만이었다.


1. 3개월의 기회, '성공한 사업가' 코스프레

처음 번아웃을 호소하며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회사에서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너무 지쳐서 그래. 3개월 휴가를 줄 테니,

쉬고 와서 다시 이야기하자."

천금 같은 기회였다.

냉철한 이성이었다면 그 3개월을 다음 사업을 위한

‘테스트 베드’로 썼어야 했다.

노트북을 펴고 치열하게 시장 조사를 하고,

MVP(최소 기능 제품)라도 만들어 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휴식'이라는 명분 아래 흘려보냈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니고, 쇼핑을 하러 다녔다.

머릿속에는 온통 '지난번처럼 나가서

또 대박을 터뜨리면 되지'라는 안일함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성공한 전직 사업가'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었다.


2. 돌아오지 않은 감, 그리고 딜레마

3개월 후, 복귀 시점이 다가왔다.

당연히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이미 "내 사업을 하겠다"라고

호기롭게 선언해 둔 마당에,

다시 돌아가서 월급쟁이 노릇을 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 생각했다면

눈 딱 감고 복귀했어야 했다."


나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이대로 나가도 금방 자리 잡을 수 있어.'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를 벼랑 끝으로 밀었다.

나는 복귀 대신 최종 퇴사를 선택했다.

회사에 민폐를 끼치기 싫다는

‘직업윤리'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현실 파악'이 덜 된 상태였다.


3. 자만이 깨지는 데 걸린 시간, 단 6개월

퇴사 후의 삶은 지난번 투잡 시절과는 달랐다.

그때는 월급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지만,

지금은 맨몸이었다.

더 무서운 건, 지난번 성공의 일등 공신이었던

'시장 상황(코로나 특수)'과 '아내의 지원'이

지금은 없다는 점이었다.


"오빠, 어차피 집에 있잖아. 이것 좀 해줘."

가정 내에서 나의 지위는 ‘유능한 사업가'에서

'백수 남편'으로 급격히 재조정되었다.

사업 구상을 하려고 해도

육아와 가사 노동이 내 시간을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잔고가 주는 공포가 엄습했다.

엑시트로 벌었던 돈은 이미 대출 상환과

전세금 반환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와 아이 교육비는

무서운 속도로 내 런웨이를 갉아먹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면서 나는 더 조급해졌다.

그리고 결국 퇴직금까지 깨버린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 주제를 파악했다.


4. 시장은 나를 기억했다, 선택권은 없었다.

결국 나는 1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링크드인(LinkedIn)의 상태를

‘Open to work'로 바꿨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가장으로서의 생존이 먼저였다.

다행히 지난 10년의 경력, 부사장 타이틀,

그리고 업계의 전문성은 아직 유효했나 보다.


헤드헌터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이사님, OO에서 오퍼가 왔습니다.

조건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전 직장의 직접적인 경쟁사였다.

과거의 나였다면? "상도덕이 아니죠"라며 거절했거나,

내 몸값을 높이기 위한 딜을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럴 '옵션‘이 없었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막지 못하면

우리 가족의 일상이 무너진다.

자존심? 평판? 그런 건 배부른 자들의 사치였다.


5. 안도감과 비참함 사이

최종 합격을 통보받고 연봉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

나는 묘한 양가감정에 휩싸였다.

'아직 시장에서 내 가치가 죽지 않았구나'라는 안도감.

'결국 돈 때문에 자존심을 굽히고 돌아왔네'

라는 비참함.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다시 정글로 돌아왔다.


과거의 '자만심 넘치던 부사장이 아닌,

'철저히 현금 흐름을 사수해야 하는

생존형 가장'의 모습으로.

지금 이 회사는 나에게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나의 오만이 초래한 실패를 만회하고,

다시는 '돈 때문에 선택권을 잃는 공포'를

겪지 않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벙커다.


이 이야기는 실패한 낭만주의자가,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거듭나는 과정의

처절한 복기다.


[다음 이야기]

다음 화부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려 합니다.

도대체 나는 왜 "억대연봉의 달콤함"을

그토록 견디지 못했는지,

그 화려했던 10년의 기록을 다시 꺼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