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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ette May 28. 2024

첫사랑의 징표


사랑은 매체가 앞다퉈 노래부르던 것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첫 사랑의 열병을 앓고서 나는 실망했다

사랑이

쪼잔해서

그리고 찌질하고 불쌍하고 촌스럽고 아프고 처절하고 비참하고 숨막히고 짜증나고 힘겹고 먹먹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워서


나를 자꾸만

그 누군가에게 말을 걸게 해서

자기 전 숨죽여 울게 해서

특정한 얼굴을 떠올리게 해서

그래서 이를 닦다가도 문득 숨이 막히게 해서


그 사람을 잃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6호선에 앉아 나는 죽고 싶었다.

그를 잃었는데 왜 사랑은 그대로인지

왜 나는 바보같이 아직 사랑을 손에 쥐고 있는지

이걸 놓아버려야 할 텐데, 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걸까?

해본 적 없으니 면역도 방법도 모른 채 목에 힘을 주고 눈물만 참았던 1월을 지나


2월

그 사람은 내 졸업식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가 아무런 의미없이 형식상 내민 말이라고 해도

나는 믿고 싶었다

그 약속을 뼛속 깊이 담았다


3월

그 이름 석자는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든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름 석자

가만히 부르면 목 안쪽이 시큰하고 눈물이 고이는 이름 석자

당신의 그 이름 석자

술 마시고 취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그 이름 석자


그리고

벚꽃이 피고 진다

봄이 오고 간다

무더위에 매미 소리가

이윽고 낙엽이 날리고

다시 또 어느 겨울의 폭설.


어깨는 무겁고 첫차를 탄 어느 날

어스름에 바람은 불고 문득 떠오르는 그 이름


그 이름을 생각하면 나는

아무리 힘겨워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멋진 사람이 된다고 약속했으니까

다시 또 언젠가 마주치면

그땐 정말 멋진 사람이 되어있고 싶으니까

나도 한번쯤은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나를 무너뜨리고

또 일으켜세우는 그 이름

그 이름을 가진 수많은 이들 중

오직 하나뿐인 당신


그런 당신과 나눌 사랑의 몫은

나의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겠지만

나는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가 있다고 믿고 싶어.

이 우습고 알량한 믿음은

첫사랑의 징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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