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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ette Apr 29. 2024

첫사랑

하츠코이

나는 그가 전신 화상을 입어 상처가 생기고 불구가 되어도 사랑할 수 있었다. 

그와 쫄쫄 굶는 것이 다른 이와 배부른 것보다 훨씬 행복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같이 풀밭에 앉아서 컵라면만 먹어도 좋을 것 같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지.

사업이 쫄딱 망해서 빚이 생기면 내가 같이 갚아주고 싶었어. 

그렇게라도 그 사람에게 내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치열하게 이 악물고 살아왔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지금까지 내가 견뎌왔던 고통과 인고의 시간이 당신이라는 종점에 다다랐다고, 그렇게 

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믿었고, 앞으로도 믿고 싶었던 시절.

그 끝엔 방관으로 살아오던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도 나를 책임져주길 바랐다…



사실


그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원론적으로는 그를 잃어버려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원래도 그 없이 잘 살았으니까. 무려 25년을 그 없이 살아왔으니까. 이제 그는 나와 하루를 공유하는 친구도 아니었고, 함께 시험 공부를 하러 갈 수 있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와 만날때조차 나는 그에게 나 자신을 편히 드러낼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일터에서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위스키나 음악 취향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살면서 쌓아온 나라는 사람의 구조에 그는 들어맞지 못했다. 

진심으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그에게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처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었다.


나는 그가 아프면 따라 아팠다.

그가 울면 따라 울었다.

그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그를 책임지고 싶었다.

그도 나를 책임져주길 바랐다. 


나의 후회의 발원지. 살아보지 못한 시간. 내가 목격하지 못한 당신의 성장과 세월. 함께 보낼 날들이 더 남았다고 믿고 싶어. 그런 건 없겠지만. 곧 당신이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모른 채 잊고 잊혀지겠지. 나는 그게 서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엇이든 내게 바라는 게 있다면 당장 꺼내 줄 준비가 되어있었어. 

첫사랑이니까. 내게 앞으로 다른 연인이 생기더라도 깰 수 없는 그 징표. 


내가 신뢰하고 좋아하던 사람. 

태어나 처음으로 닮고 싶었던 사람. 

내가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사람. 


이른 아침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살아온 세월이 나이테처럼 동그랗게 빛을 내던 당신. 매 순간 처음인듯한 순수함. 아이처럼 욕망에 투철한 당신. 태어났으니 마지못해 사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다해 살고 있었다. 그런 점이 좋았다. 


거울에 비친 면도하던 모습. 양치하던 뒷모습. 향수를 뿌리는 모습. 차키를 쥐는 모습.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하는 모습. 핸드폰으로 주식을 확인하는 모습. 신문을 펼치는 모습. 커피를 내리는 모습. 조카를 안아 들던 모습. 사람들이 좋아하는 당신. 


그런 당신은 다음 생엔 무엇으로 태어날까. 다른 곳에 다른 시간에 태어났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일까. 무의미한 질문이지. 


내세와 윤회는 없어. 모두가 딱 한 번 살고 딱 한 번 죽으니까. 이 말을 내뱉으니 두렵다. 슬퍼졌다. 그렇지만 그래서 이 삶은 더욱 무너질 수 없어. 다음 기회는 없을테니 더 오롯이 시간을 채워야 해.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까.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 있으니까. 당신에게 보여줄 기회는 없더라도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니까.


내게 줬던 모든 걸 도로 가져가. 나처럼 외롭지는 마.


나는 택시 문을 세게 닫았고 당신은 미소가 예쁜 여자와 내 눈 밖으로 사라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다음 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모든 우연을 거쳐 만나기를.

그렇게 또 다시 한 번 스칠 수 있을까. 

당신이랑 사랑을 하고 싶으니까. 

오래. 걱정없이. 문제없이.

이번이 아니면

다음 삶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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