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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Dec 11. 2022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기분과 평생 싸워야 해’

인터넷에서 제목과 같은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울고 싶어졌다. 위로이자 확인 사살 같은 말. 본디 삶이란 누구에게나 투쟁의 과정인가봐. 하지만 평생 싸워야 하는 거라면 여기서 그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꽤 오랫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 우울의 샘이 있다.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도 나는 죽고 싶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죽음의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 상상은 하면 할 수록 나를 더 형편 없게 만든다. 내가 더 싫어진다. 그래서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 먹도록 내 감정 하나 컨트롤 못하는 바보 같은 인생. 악순환이지만 어쩔 수 없다.

죽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지금 와서 적어보면 참 시시하다. 한 주 내내 회사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금요일 퇴근하고도 털어 버리지 못한 채 쓰레기 같은 기분을 껴안고 잠들었다. 혼자 눈 뜬 토요일 아침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마음에 계속 핸드폰만 봤다. 외로웠다. 나를 잔뜩 망쳐놓고 싶은 기분에 빵과 과자를 우걱우걱 먹였다. 기분이 안 좋으면 내가 나를 달래야 하는데, 나는 왜 자꾸 나를 망칠까, 그런 자책을 하면서 더욱 우울해졌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어릴 때는 선명한 꿈이 있었다. 그리는 세상도 뚜렷했다. 그런 희망 혹은 욕망들이 나이를 먹으며 좌절될 때마다 자기 혐오로 변했겠지. 왜 기대만큼 살지 못하나,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차라리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때로는 죽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었다. 그래, 죽으면 더 이상 이런 굴레도 끝이다.

나를 너무 죽이고 싶은 마음은 나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의 반작용이라 했다. 차라리 모를 걸, 나는 어쩌자고 그걸 알아서 차마 나를 죽이지도 못했다.


이상한 맥락이지만, 주말에 그런 소용돌이를 겪은 뒤에는 마음이 되려 편안했다. 나를 비난하고 파괴하고 싶은 충동은 또 다른 내가 지금 힘들다고 전하는 솔직한 마음이구나. 오히려 내가 나를 조금 더 알게 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잘 살고 싶은 나, 사회에 나가 돈 벌고 사람들을 만나는 나, 성실하고 무탈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ㅡ 집에 있는 나, 내 안 가장 깊은 곳의 우물 속에 사는 나, 외로운 내가 전하는 속마음. '나도 존중해줘. 나 그만 무시해. 나도 사랑받고 싶어. 너는 나를 알아줘. 안 그러면 나 진짜 죽을거야.'


나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솔직해야 한다. 내 마음 속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을 또 다른 내가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도록. 외롭다고 말하는 내 손을 반대편 내 손이 다정하게 잡아줄 수 있도록. 더 이상 두 ‘나’가싸우지 않도록.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기분과 싸우는 건 한 쪽의 나만은 아니다. 사실 모든 쪽이 외롭다. 

서로를, 그러니까 모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관계는 이미 내 안에 있다.



나는 너의 모든 걸 알아. 너의 우울과 불안과 호들갑과 겸손과 노력과 비굴을 사랑해. 그러니까 굳이 어떤 사람처럼, 어떤 면모를 갖춘, 어떤 차원의 네가 되지 않아도 돼. 그런 노력보다 지금의 너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어. 

그동안 왜 나는 너에게 그렇게 혹독했을까?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아'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하는 너'를 훨씬 더 좋아했지. 조건부 사랑.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을까.

: 나는 사랑받고 싶었어. 나는 너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나를 채찍질하거나 평가하는 말 대신, 이렇게 태어난 나를 인정해주길 바랐어. 아무도 몰라줘도, 너만은 내 가치를 알아주길 바랐어.

: 미안해. 미안해. 너무 늦게 알아봐서. 습관처럼 주워서 적어 두는 좋은 말들, 다 너에게 하는 말이야. 사실은 나 너를 응원하기 때문이야.

나 앞으로 너를 별처럼, 꽃처럼, 봄처럼 사랑할게.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받는, 네가 평생을 찾아 헤매다 자주 울었던, 세상에 없다는 그 사랑을 이제 내가 너에게 줄게.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꿈꾸다 또 상처받고 네 삶이 초라해진다고 해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철없이 살다가, 망상을 쫓다가, 우리 인생이 어디론가 흘러가도 괜찮아. 그런 너를 비난하지 않을거야. 그 옆에 내가 꼭 있어줄거야.




이것은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다. 어느 날 또 우울이 찾아와 곤두박칠 치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동아줄이다. 여유가 있을 때 넉넉히 지어서 얼려 두는 냉동밥 같은 거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덧없는 듯한 그 순간의 감정 때문에 나의 꽤 괜찮은 날들을 뒤로하고 내가 죽어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이것은 당신에게 쓰는 편지기도 하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 온 당신과 내가 단번에 ‘그런 감정’ 하나로 서로를 잘 이해하는 기분, 좋았다. 감히 누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당신에게도 가끔씩 찾아오는 '그런 류'의 기분이 뭔지 나도 아니까, 이런 내가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 쓰는 글이다.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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