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 때 엄마 생각이 났어

엄마에 관한 글쓰기 6

by 조각보자기

엄마가 내게 자주 했던 말 중 하나는 ‘쓰잘데기 없는 짓거리 하지 마라’였다. 쓸데없는 일, 예를 들면 하드보드지로 필통을 만들거나 십자수를 뜨는 일,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사는 일, 엄마 아빠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일 등. 내가 취직을 한 뒤로는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가는 것도 쓸데없는 일의 범주에 포함됐다. 어쩔 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쓸데없다고 했다. 한 달 넘게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면 이 또한 쓸데없다고 할 것이다.


엄마는 돈도 안 되는데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을 대게 쓸데없다고 표현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데 자원을 낭비할 수 없었다.

한 해 농사 지어 농약 값과 기계 품삯을 갚고 나면 주머니에 남는 돈은 500만 원 안팎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농번기가 아닐 때는 들이며 공장으로 남의 일을 다녔다. 지친 몸으로 돌아와서 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방으로 던지곤 했다. 애증이 묻어있었다. 쉬는 날 없이 품을 팔아야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일당을 온전히 자기 몫으로 쓰지 못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피로에 준하는 임금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래도 자기 전에는 지폐를 잘 펴서 얼마를 수중에 넣었는지 달력에 꼭 기록했다. 가끔 그렇게 번 돈이 100만 원 남짓이라고 자랑스럽게 말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시간은 곧 돈이기도 했다. 잠을 줄여 일 한데는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아빠는 오늘 하루 밭일을 쉬고 트로트 가수가 온다는 면 소재지 행사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엄마는 쓸데없다고 했다. 외가 친척들이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해도 쓸데없다고 했다. 가끔은 말 그대로 정말 쓸데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집을 지켜온 살구나무를 베어 버리고, 강아지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리기도 했다.


힘들게 번 돈인 만큼 엄마는 쓸데없는 데는 돈을 쓰지 않으려 애썼다. 서울에 올 때 우등 버스는 쓸데없이 비싸다며 일반 버스를 탔다. 병원에 가 봤자 쓸데없이 큰돈만 든다고 틀니도 야매 의사에게 맞췄다. 좁은 의자가 불편하고, 자꾸 잇몸이 아픈데도 엄마는 기꺼이 감수했다. 돈이 적게 드는 쪽이라면 고생하는 시간을 감내할 만했다. 엄마에게는 그런 노력이 오히려 쓸모 있는 일이었다.


엄마를 보고 자란 나도 뭐든 돈이 많이 들면 주저하게 됐다. 토익 학원에 등록하면 점수가 더 잘 나올 듯 했지만 그냥 혼자 공부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모임은 즐거웠지만 밥값이 많이 나가 망설여졌다. 비싼 물건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싼 옷만 사 입었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 대학 등록금 자체가 이미 엄청난 낭비였다. 장학금으로 손실을 메꿔야 했다. 아르바이트로 추가 지출도 막아야 했다. 돈을 헤프게 쓰면 안 됐다. 시간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휴학을 하고 싶었지만 취업을 했다. 나는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택인 줄 알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23살, 인턴을 끝내고 받은 돈을 몽땅 털어 첫 해외여행을 갔다. 목돈을 저축하지 않고 여행 따위에 써 버리다니, 엄마라면 이 돈을 이렇게 쓰지 않을 텐데. 다른 나라에 떨어져서 제일 먼저 엄마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에 이내 엄마를 잊었다.

25살, 기분 전환을 위해 겉보기엔 아무 변화도 없는 헤어 트리트먼트에 큰돈을 썼다. 커트비를 아낀다고 미용실도 띄엄띄엄 가는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쓴 액수를 알면 미쳤다고 하겠지. 하지만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마음에 들어 돈이 아깝지 않았다.

26살, 유기된 고양이를 데려다 키웠다. 엄마가 봤을 땐 돈만 들고 고생만 더하는 짓이었다. 나는 생명을 돌보며 ‘엄마도 나를 키울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엄마 생각이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쓸데없는 데 돈이나 시간을 허비하는 날이 많아졌다. 카메라를 샀다. 기차여행을 떠났다. 연애를 했고, 결혼도 했다. 모두 돈이 안 되는 일이었고, 오히려 돈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의 반은 이처럼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딱 한 번, 엄마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장에 갔던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엄마 품에 작은 인형이 안겨 있었다. 귀여운 너구리 인형이었다. 우리 엄마가 크리스마스라는 걸 알다니, 내 선물을 ‘사’ 오다니. 어린 나는 그 순간이 꼭 꿈만 같았다.

몇 년 전에 꿈 같은 순간이 또 있었다. 3년을 설득한 끝에 엄마 칠순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이었다. 굳은 날씨 탓에 많은 것을 하지는 못 했지만, 우리는 함께 제주행 비행기를 탄 것만으로 색다른 추억을 만들었다. 엄마는 매 끼마다 오만 원짜리 두 장을 턱턱 내고 ‘이럴라고 돈 벌었제’라며 뿌듯해했다. 일을 했으면 돈이 되었을 2박 3일을 가져와 되레 돈을 썼지만, 그 여행만큼은 쓸데없다고 하지 않았다.


요즘 엄마는 비 올 때 낮잠도 잔다. 주전부리를 먹으며 미스터트롯을 밤늦도록 보기도 한다. ‘아야, 어째 암 것도 하기 싫고 게으르다야’ 자책을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 소식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다.

나는 엄마가 남은 인생을 좀 더 쓸데없는 것에 허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쓸모없다 여겨졌던 것들이 직업이 되기도 하고 돈을 벌게도 하는 시대니까. 그토록 좋아하는 빵을 마트에서만 사지 말고 제과점에서도 사 봤으면 좋겠다. 제대로 틀니를 손보고, 미루기만 한 눈썹 문신도 했으면 좋겠다. 우등 버스를 타고 이미자 콘서트에 갔으면 좋겠다. 돈과 시간과 자신의 쓸모를 재느라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쓰고 보니 이 이야기는 스무 살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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