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관한 글쓰기 5
“아, 진짜, 엄마! 좀 갖다 버려!” 쟁반을 찾으려고 싱크대 하부장을 열었더니 500㎖ 빈 페트병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자식들이 사 마신 생수, 회관에서 먹었을 매실음료, 조카가 어릴 때 먹었던 보리차까지 병 종류도 다양하다. 하부장 깊숙한 곳에는 냄비 대신 1.2ℓ 페트병이 열 맞춰 꽂혀 있다.
“아야, 버리지 말어라잉! 엄마가 죽고 살고 모았구만. 다 쓸데가 있어야.”
엄마는 다시 페트병을 싱크대에 우겨 넣는다. 이렇게 모은 병은 물, 얼음물, 무말랭이물 등을 담는데 쓰였다. 간장, 매실액, 참기름, 콩, 깨, 찹쌀 등을 담아 놓고 자식에게 병째로 쥐어주기에도 요긴했다. 그 용도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싱크대, 주방, 화장실, 아래 창고 등 세울 수만 있다면 어디에든 모아 둔 페트병이 백 개를 족히 넘는 게 문제다.
페트병뿐만이 아니다. 아이스박스, 종이가방, 비닐봉지, 끈… 엄마는 한 번이라도 더 쓸 만한 모든 것들을 모았다. 특히 비닐봉지는 쓰임도 다양했다. 쓰레기 담을 것, 깨끗한 것 담을 것, 겉에 한 번 더 쌀 때 쓸 것 등. 용도별로 구분된 비닐봉지 덩어리가 제일 큰 비닐봉지에 담겨 마치 공처럼 주방을 굴러다닌다. 물론 식품용 위생백도 사은품으로 열 팩 정도 받아 뒀다. 두면 다 쓸모가 있단다. 쓸모야 있겠지만, 그 쓸모보다 비닐봉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걸 엄마는 왜 모르지.
이처럼 쓰레기 재사용에 일가견이 있는 엄마는 물건도 좀처럼 못 버리는 사람이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 때 쓰다 만 지갑을 아직도 쓰고 있다. 지갑이 없는 게 아니다. 선물 받은 지갑이 두 개나 된다. 다 터진 지갑 좀 버리라고 잔소리를 하면, ‘잉, 그러까’하면서 새 지갑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돈도 몇 장 넣어 본다. 드디어 새 지갑을 개시하려나 하면, 지폐를 낡은 지갑에 도로 넣으며 멋쩍게 웃는다. 십 년째 대기 중인 새 지갑은 죽을 때 관에 넣어가라고 아빠로부터 핀잔만 듣는다.
헌 것은 헌 것대로 아까워서, 새 것은 새 것대로 아끼느라 안고 사는 물건이 고향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잔치에 썼던 접시와 술잔, 형형색색 플라스틱 바구니와 채반, 유행 지났다며 30년 전에 오빠가 해남에 갖다 준 옷… ‘느그 안 입는 옷 버리지 말고 다 해남으로 갖고 와라잉’. 엄마는 일복으로 한 번 입고 버리겠다 말했지만 우리가 보낸 옷을 수년째 계속 입고 있다.
일본의 정리정돈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고 했다. 많은 미니멀리스트도 수십 개의 그저 그런 물건보다 설레는 한 가지를 가지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엄마의 물건 씀씀이를 알면 경악할 노릇이다.
엄마 또한 일본에서, 도시에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보다 존재를 우선한다는 목적으로 멀쩡한 물건도 기꺼이 비우는 문화가 유행이라는 사실을 알면 혀를 찰 것이다.
나도 5년 정도 미니멀라이프에 심취했었다. 13평 남짓한 집에서 요리조리 물건을 수납하느라 더 이상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공 서적, 학용품, 안 입는 옷, 일기장 등을 비웠다. 침대나 TV를 비운 게 아니니 공간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남은 물건과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내 공간과 삶을 통제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랬기에 뭐든 껴안고 사는 엄마의 방식이 한동안 못마땅했었다. 있으면 쓴다지만, 과연 이중에 몇 개나 써봤을까 싶은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이미 빛바래고 삭았다. 게다가 엄마도 물건과 함께 늙고 있으니 종국에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그런 집에서 엄마가 떠난 뒤 온갖 잡동사니를 치울 일도 끔찍했다.
하지만 고향집은 내 공간이 아니었다. 한 자리에서 100년 세월을 축적한 어른들의 집에 나는 잠시 머물렀을 뿐, 내가 그곳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나름대로 규칙과 질서를 갖추고 함께 살아 온 물건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시골집은 방도 여러 개고 창고도 많고 마당도 넓으니 물건을 비워야 할 아무런 물리적 이유가 없었다.
요즘엔 나도 딱히 엄마에게 할 말이 없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실천하지 못한 채 이상한 강박만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행하는 립스틱을 사고 싶어 안달 나거나 필요도 없는 립스틱을 열 개나 생각 없이 사지는 않게 됐지만, 설레는 단 하나의 립스틱이 없다며, 그것을 찾아야 한다며 여전히 쇼핑몰을 전전하는 것. 며칠에 걸쳐 주방 살림살이를 재고 파악하듯 적은 뒤 국자가 두 개라고, 국자를 두 개나 갖고 있는 나를 자책하며, 빨리 하나를 처리해야 한다며 전전긍긍하는 것. 내가 소비와 물건에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은 여전했다.
반면 엄마는 단지 어디서 얻은 물건이 많을 뿐, 애초에 소비에는 큰 관심이 없다. 검지 길이의 짜리몽땅한 눈썹연필 하나를 30년 째 쓴다. 오늘 무엇을 입을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개의치 않는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파악할 새도 없이 일에 바쁘다. 소유물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삶의 본질에만 집중하는 미니멀리스트는 오히려 나보다는 엄마 쪽이란 생각마저 든다.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지만 냉장고는 세 대나 되는 집. 고장난 전축이 수십 년 째 같은 자리에 있고, 화장지가 천장 닿게 쌓여 있는 집. 오빠가 사준 골드스타 세탁기가 어쩌다 한 번 돌고, 대부분은 맷돌 위에서 손빨래를 하는 집. 세상 문물이 느리게 찾아가고, 한 번 들어간 것은 좀처럼 나오지 않으며, 버려야 할 것과 들여야 할 것의 경계를 신경 쓰지 않는 그 집의 질서. 엄마의 방식이 아무렴 어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볼펜이 50자루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