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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 Apr 08. 2021

자존감에 대해

: 존중받아 마땅한 당신에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미덕이 된 요즘, 당신은 과연 잘 실천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눈치 보지 말고 살으라는 말에 정말 눈치를 안 볼 수 있는지. 왜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지. 자존감은 자신감과 어떻게 다른지. 많은 얘기를 꺼내보려 한다.



본인은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민감한 내용을 담은 많은 주제들에 의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것'이라 표현하고 싶다. (그 주제에 해당하는 단어만 보면 미뤘던 생각이 많아질 걸 알기에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보면 자존감은 저 밑바닥에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자신감은 있는데, 자존감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은 있어하는데 확신은 없고, 고독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외로움을 경멸하는 그런. 이건 단순히 자신감이 없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자존감이 낮으면 우울해지는 이유는, 나를 좋아하는데 더 격렬하게 사랑해주지 못해서 그렇다. 본인이 딱 그러니까 말이다. 이 말의 근본에 찬성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다시 잘 생각해보라.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서 나를 더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스스로 정의 내린) 단점에 턱턱 걸려버리니까 슬픈 것이 아닌가. 여태까지 본인은 섣불리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두려워 딱 잘라 말한 적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단호하다. 확실히 주장하고 싶다.



떨어진 자존감은 금세 회복하기 힘들다. 자존감 주제에, 떨어지는 건 훅! 떨어지면서 다시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눈에서 레이저를 쏜다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마되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을 거란 말에 동의는 하지만 실천할 수 없는 마음이다. 스스로도 남을 평가해본 적이 있거나, 그런 광경을 마주한 적이 있어서일 거다. 또한 자존감이 떨어질수록 남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설령 진실을 말한다 해도 나 자신으로서는 상대가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금세 회복하기 어렵다 얘기했으니, 예를 들어 보겠다.

우리 모두가 학창 시절 좋은 성적에 목을 매게 된 건, 궁극적으로 사회 및 체계가 초래한 것이지만, 결국 성적으로 인해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앉아서 사회 탓을 하거나 지나간 성적을 붙들고 울어서는 될 게 아니다.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과 함께 자존감을 끌어올리든지, 이쯤에서 타협을 하든지 사회 체계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먼지 같은 내가 어떻게 사회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겠는가. 결국 극복 아니면 타협이지만, 타협은 유효기간이 한정적이다. 당장 타협을 해도 막상 입시철이 되면 타협한 사실을 굳건하게 지켜낼 수 있겠는가? 결국 뾰족한 수가 회복밖에 없어서 힘이 부치는 것이다. 분명 시작은 내 탓이 아니었는데 결국은 내 탓을 할 수밖에 없는 신기한 구조이다.



하지만 회복이 단기간에 가능한 거였다면 좌절할 일도 없었을 거다. 회복하기 힘들거나, 아니면 불가능하니까 우리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거다. 이 부분은 본인을 포함, 아무도 탁 트인 답을 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현대인들이 위로로써 '파이팅'이라는 말보다 '수고했다'는 말을 선호하는 이유다. '힘을 내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걸 어떡하라는 거야?' 그저 노력하는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그마저도 나의 속에 있는 얘기를 섣불리 꺼낼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인 거다. 



끝없이 무릎을 꿇으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릎이 심하게 다치고 긁힌다. 알아도 일어날 수 없다면 상처를 무시하는 선택을 할 테지만, 결국 낮은 자존감이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는 건 위험한 일이다. 이에 대해 당당히 치료받을 수 있길 바란다. 거짓말이라 생각될 여러가지 말을 제치고 얘기를 꺼내고 싶다. 본인을 탓할 필요가 없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마땅한 노력도 없이 모든 걸 탓한다면 잘못된 행동이지만, 우리는 쉬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행복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나의 자존감을 위해 '행복 보존 법칙'이라며 남의 행복을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가끔은 행복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여태까지 잘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당신 곁을 찾아가길 진심으로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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