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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ug 13. 2024

아빠보다 멋있는 아이

*지난 6월에, 그러니까 아이의 방학 시작 전에 써 두었던 글을 뒤늦게 올립니다. 



아침에 둘째를 학교까지 라이드 해 주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는 네 나이때 해보고 싶은게 있어도 눈치를 보느라 못해본게 참 많은데 넌 하고 싶은걸 스스로 찾아서 하는게 참 대단하고 멋있어 보여. 아빠보다 네가 훨씬 더 멋있는 사람이라서 그게 정말 자랑스러워."


사춘기 남자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 하다. 


"알아요. 아빠가 전에도 말했어요."


"그랬니? 그래도 또 자랑스러우니까 또 말하는건 아빠 맘이야."


"네."


집에서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까지의, 차로 5분이면 가는 짧은 거리를 달리는 차 안에서 아빠와 아이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내 착각일지 모르나, 차 안의 공기는 제법 훈훈하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달달하고. 어쨌든 아이가 차에서 내리면서 건성으로 말하는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하이톤의 목소리에서 아이가 기분 좋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빠의 칭찬 때문이었는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길 보고 웃으며 반겨주는 친구들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 친구들 사이에 아이의 여자친구가 있었다는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는건 안다. 아이는 자기 여자친구가 누군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내도 나도 누군지 알고 있다.)




둘째는 이번주에 학교 뮤지컬 공연이 있고 오케스트라 공연도 있다. 


뮤지컬은 세번째 공연인데 지난주에 두 차례 외부 공연이 있었고 이번주에는 학교 친구들 앞에서 하는 교내 공연이 있다. 인어공주에서 왕자 에릭 역할을 맡아 열연을 했다. 

이번 봄 공연에서는 아이의 무대 위치가 별로여서 사진을 한장도 건지지 못했다. 이 사진은 작년 겨울 공연 사진.
공연의 시작. 제일 왼쪽이 둘째인데, 이렇게 셋이 등장해서 사랑과 여성에 대해 대화로 극을 시작했다.
공연의 클라이막스. 하이라이트임에도 무대 장치들이 허접한데, 이런 무대 배경이나 소품들도,  음향 효과도 모두 아이들이 직접 준비했다는걸 생각하면 달리 보인다.


예체능쪽으로 재능이 없어서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음치다) 친구들과 뮤지컬 연습을 하고 노래를 하는게 좋다며 학교 뮤지컬 공연 오디션을 혼자 찾아가서 보고 배역을 따내기도 하고,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지만 연주회때 보면 다른 아이들 연주와 조금씩 따로 노는(박치다) 수준에서 머물러 있지만 그 역시 친구들과 함께 하는게 좋다며 4학년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연습에 참여하고 연주회에 나선다. 작년에는 마을 노인 분들을 위한 자선 연주회에도 자원해서 참가하기도 했다. 아이는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친구들과 한 공간에 모여서 악기 연주를 배우고 함께 공연하는게 즐거우니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따로 교습을 시켜주마고 물어봐도 거절한다. 잘하는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리고 학교 오케스트라에 보면 그렇게 악기 연주 자체가 좋아서 즐기며 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다들 실력도 고만고만해서 못해도 티가 잘 안나고 잘해도 티가 잘 안난다. 정말 단순하게 악기 연주가 즐거워서 모인 아이들의 오케스트라라고 해야 할까. 정말 잘하는게 목적인 아이들은 챔버라고 따로 모인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지 않지만, 이 아이는 남의 시선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아주 즐겁게 한다.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그걸 하는게 즐거운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항상 신경쓰고 배려하지만 최소한 자기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지를 절대 잊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나는 십대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그런게 잘 안된다. 자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게 된다. 내가 이 아이였다면 아마도 나는 오케스트라도, 뮤지컬도 아예 시도도 안했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해보고 싶었음에도 그런 이유로 포기한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이 아이는 한명의 인간으로 볼 때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셋 키우면서 매 순간 아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투영하려는 욕심과 싸우며 산다. 조금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른인 혹은 아빠인 내 판단에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상적으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 을 투영하려는 욕심. 다른 어른들로부터 "어쩜 이 아이는 이렇게 예의가 발라요", "어쩌면 이렇게 이걸 잘해요. 대단하네요." 와 비슷한 칭찬들을 아이가 받았으면 하는 생각들이 거기에 속한다.


이성의 한 귀퉁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걸 알면서도 그런 욕심을 억제하는데 정말 많은 용기와 노력이 들어간다.  


비단 이 아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두 아이들에게도 자꾸 내가 바라는 모습을 투영하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노력을 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아직 그런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고.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와 둘째가 사춘기를 맞이하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욕심과 미련을 깨닫고 그걸 억누르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부분은 정말 다행이겠지.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바램대로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내가 직접적으로 "멋있다" 고 칭찬을 해 주는건 아이들에 대한 격려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잠금장치이기도 하다. 내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못하게 막는 잠금장치. 




아이의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무대가 떠나가라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주는 가족(혹은 지인)들과 자기들끼리도 해냈다는 기쁨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 큰 소리로 잘했다며 격려를 주고 받는 아이들 틈에 뒤섞여 있었던 탓에 이날 둘째를 찾아서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까지 무척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집으로 오면서 답을 알지만 아이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7학년이 되서도 뮤지컬 오디션 볼거니?"


그리고 당연한, 그리고 짧은 답이 되돌아 왔다. 


"네."


아이가 7학년때도 오디션을 통과할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갈수록 이쪽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낼테니 언젠가는 분명히 한계를 맞이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아이는 다음에 있을 새로운 뮤지컬 오디션에서 떨어지더라도 그 사실을 아쉬워 할 지언정 좌절하지는 않을 거라는걸 안다. 분명 또 다른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서 훌훌 털고 일어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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