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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진로 선택/과목 선택

by 봄마을

10학년이 된 첫째는 요즘 11학년때 들을 AP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땐 조금 이른 것 아닌가 했는데 AP가 학교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있는 수업이라는 걸 생각하면 준비 기간이 1년쯤 있는 것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필요하겠구나 싶다.


대학을 갈 생각이 있고, 어느 대학을 가는지, 그리고 어떤 분야로 진학하는지가 아주 중요한 학생과 부모들에게는 AP 과목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얽힌 여러 해프닝도 많이 듣게 된다. 하지만 대학에 대해 큰 욕심이 없는 우리 부부는 이 문제로 아이를 push 할 생각이 없다.


하여, 나와 아내는 첫째에게 과목 선택을 온전히 맡겼다. 그리고 아이는 Chemistry와 psychology 두 과목을 선택했는데 자기는 STEM 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게 유일한 설명이었다. 그 과목들에 대해서는 별 말 안 했지만 딱 하나 질문을 했다. Physics는 생각 없냐고. 그리곤 1초의 고민도 없는 단호박 답변을 들었다.


"생각 없어요."


설득도 없고 설명도 없다. 그냥 통보.



AP Physics 1 은 재미있고 쉬운 내용들만 배운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는 말을 해줬지만 요지부동. 더 이상 대화가 의미 없는 것 같아 그렇구나 하고는 대화를 마쳤다. 생각해 보면 나도 공대 안 가고 물리학과 가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 아버지 모두 별말씀 안 하셨지만 나는 두 분 모두 내심 내가 순수과학 쪽보다는 공대를 선택하길 원하셨던걸 알고는 있었다. 30년의 시간이 흘러, 나도 자기 미래를 선택하는 나이가 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었다. 아이의 선택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 건, 해봐야 소용없는 것도 있어서지만 잘되든 잘못되든 자기가 처음으로 하는 삶에 대한 선택 자체를 못하게 해서는 안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대화를 통해 아이가 내린 결론은 (1) 자신은 새로운 걸 생각해 내는 게 좋지만 예술 쪽은 아니라는 것 (2) 사람마다 다르게 말할 수 있는 추상적인 결론보다는 결과가 눈에 보이고 빠르게 확인되는 것들이 좋다는 것. 그러니 STEM 쪽이 맞는다였다.


그리도 STEM을 하겠다는 아이가 아빠의 전공인 그것도 박사 학위까지 있는 physics는 생각도 안 한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 physics 전공을 하지 않아서 아쉽다는게 아니라 수업조차도 들을 생각을 안한다는 부분이. 하지만 어쩌랴. 그 정도 아쉬움은 아침에 마시는 따듯한 차 한잔으로 씻어 내려보내야지. 내가 scientist가 아닌 engineer가 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께서 내 선택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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