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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Jun 03. 2023

We Remember Moments

오늘 저녁 학교 뮤지컬팀에 속한 둘째의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둘째의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친구들과 기분을 내는 둘째와 함께 아내는 학교에 남고 나는 첫째와 막내를 데리고 집으로 먼저 걸어왔다. 해는 이미 넘어갔으나 하늘은 아직 붉게 꼬리를 끌며 군청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선선한 기온과 건조한 바람이 함께한 정말 좋은 날씨였다. 즐거운 공연을 본 뒤였고 날씨마저 좋다 보니 두 아이들 모두 약간씩 기분이 업 되어서는 앞다투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첫째는 금성의 날씨 설명을, 막내는 요즘 많아진 숙제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아빠는 너희들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집으로 반쯤 걸어 왔을때 문득 첫째와 막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는 너희들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이냐며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주며 말을 이었다. 


"△△이의 뮤지컬 공연을 보고 아빠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이 길을, ㅁㅁ이는 낮에 노느라 숙제를 못해서 걱정을 하고 있고 OO이는 금성에 대해 아빠에게 설명해주던 지금을 나중에 어른이 되서도 기억했으면 좋겠어. 맞잡은 아빠의 손 감촉을, 지금의 이 날씨와, 어둑어둑해져가는 하늘과,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얼굴과 미소를, 저기 언덕 위로 보이는 우리집 porch light 까지. 그 모든 것들을,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은 첫째는 피식 웃으면서 짧게 "네." 라고 했고 막내는 "너무 많아요~~!" 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막내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 안으며 "너무 많다고 한 지금 네 말도 기억해야해~!" 라고 하니 아이가 자지러 졌다.




'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이탈리아의 시인 Cesare Pavese가 한 인간의 기억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통찰.


오늘 저녁이 그런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이었음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억속에 남아 있는 내 어린 시절이 몇몇 장면들처럼, 내 아이들이 커서 내 나이가 됐을때 수십년전 아빠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며 느꼈던 오늘 저녁의 단편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을 웃으며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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