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으면 과거에 산다.(2/2)

by 아빠는치료사

<들어가기 전에>

한 인간의 작은 경험과 좁은 생각입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읽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략 4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 회사에서 승진 대상이었다. 나이, 연공서열이 중요한 보수적 제조회사이기에 기본조건을 채우고, 징계 등 큰 이변이 없는 한 진급이 되는 문화였다. 진급자 발표 두 달 전쯤, 담당임원 Y가 오가면서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부서장 일 때 몇 년 같이 일했었다, 여러 어려운 업무를 같이 헤쳐나왔기에 나와 좋은 관계였다. 그래서 임원이 되었을 때 다가오는 인사에서 내가 불이익받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무려 대기업 임원인 그가 내 앞에서 수차례 뭔가 할 말이 있어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니 의아했다. 할 말이 있으면 임원실로 불러서 하면 되는데, 왜 그럴까? 이상했다.


그쯤 이상한 기류가 포착이 됐는데, 같은 팀에 경력입사하여 갓 일 년 된 H 씨를 임원들이 무리해서 잘해주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임원들은 직원들 몰래 임원실로 H를 불러서 상장을 따로 지급했다. 본래 회사는 승진가점을 주는 임원표창이 있으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주는 것이 관례였다. 누군 갈 의식 해서 숨어서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같은 팀에 팀원이 상 받으면 좋은 건데, 왜 굳이 감추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


두 달이 지나고 승진자가 발표되었다.

경력, 회사 기여도, 당해 실적 등에 있어 논리적으로 밀릴 게 없는데도 나는 탈락했고, A는 승진이 되었다. 내가 수년을 충성을 받친 회사는 이제 갓 업무를 시작한 그를 택했다.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다.


객관적 지표에서 무엇이라도 하나 밀리는 것이 있었다면 억지로 라도 인정했을 것 같다. 아니면, Y임원이 무슨 핑계를 대든 지 간에 미리 양해를 구했거나, 승진한 A가 회사를 취미로 건성건성 다니는 준재벌집안의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때의 그 분노가 그만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민했던 육아휴직을 바로 신청했다.


뜬금없이 강력 펀치를 맞으니, 뭐래도 대응을 해야 했다. 그렇잖아도 아내와 육아를 위해 내가 휴직을 하던지 아내가 퇴사하던지를 놓고 고심하던 차였다.


그렇게 나의 육아휴직은 Y임원의 배신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자신이 내게 저지른 잘못(?)을 아는지, 그는 육아휴직요청서를 별말 없이 승인했다. 그렇게 시작된 휴직 기간 동안 나는 배신감으로 인해 자주 치를 떨었다.


직원들 시선을 의식해서 몰래 상장을 수여했던 일, 눈치를 이래저래 보며 할 말을 하지 못했던 Y의 표정들이 자주 생각났다. 일상을 잘 살다가도 뜬금없는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곤 했다.


어찌하겠는가? 나 역시 단점이 많은 인간이고 찍힐짓을 해서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려고 해도, 존경했던 상사에 대한 배신감이 너무 커서 괴로웠다. 빽 없다고 노골적인 괄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Y를 향한 타는 분노는 한 달에 몇 번은 일어나서 내 기분을 망치곤 했다.


그렇게 2년 반이 흘렀고, 회사에서는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희망퇴직을 통해 오랜 회사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희망퇴직이 승인되고, 퇴직일이 확정되었다.

퇴직이 확정된 그날 밤, 2년 넘도록 증오했던 Y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가는 마당이니, 그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퇴직일, 퇴직금, 위로금 모든 것이 확정된 시점이었기에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 젊음을 받친 회사를 떠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면, 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이 옳은 일이라 여겼다.

"어. 그래. 오랜만이다."


"퇴사가 확정돼서 마지막으로 보고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그래, 이번에 여러 명 나간다고 들었다..."


"돌아보니, 한다고 했지만 제가 스타일이 강해서 상무님을 종종 불편하게 했을 거 같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그래 진짜 고맙다. 조만간 연락할게. 한번 얼굴 보고 얘기하자..."


그는 내 전화로 인해 자신의 죄책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여겼는지, 연신 여러 번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화를 끊자, 해방감이 느껴졌다.


뜬끔없이, 불현듯 타오르던 분노가 내 안에서 그제야 완전히 사라졌다. 2년 넘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에 대한 배신감은 식지 않았었다.


TV드라마에서 승진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진급과 관련된 브런치 글을 읽게 되면 나는 급작스럽게 분노 모드가 되었었다. 불현듯 나타나던 분노 증상은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2년 넘도록 한 달에 두어 번은 이런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도해도, 책을 봐도 사라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던 분노 증상이, 내 감정보다는 가해자의 감정을 배려한 그 한마디 말이 내 입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날 위해 더 빨리 용서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의 감옥에서 출소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건 자유였다.


나는 과거에 머무르며, 상처에 휘둘리는 삶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그래서 용서는 해방이다.


용서는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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