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얘기할 때 한자는 스스로 자(自), 높을 존(尊), 느낄 감(感)을 쓴다. '스스로를 높게 여기는 느낌'이다. 나는 높을 존(尊)을 존재할 존(存)으로 바꿔 써도 괜찮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스스로 높기(自尊) 위해, 스스로 존재(自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자존감이 바닥인 이유는 대부분은 환경적 요인이다.
자주 비교, 억압하는 부모, 원망하고 무시하는 회사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면, 그들이 하는 말에 의해 과하게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존감 회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한 외국계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경험이 전무한 쌩신입이었다.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사수(직속선배)하고 관계가 중요했다. 2년 정도 먼저 입사한 선배는 나르시시즘이 심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이 강했다. 내 평생 만난 사람 중 제일 강한 왕자병이었다고나 할까?
준수한 외모와 실력, 괜찮은 연봉을 받던 그가 어느 정도의 자뻑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내 라이프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삶이어서 불편했다. 즐기기 위해 매주 클럽에 가고, 여러 여자를 만나는 것에 기쁨을 얻는 사람이었다.
나는 여자들 많은 클럽이나 룸살롱 같은 곳을 평생에 가본 적이 없었다. 가고 싶지 않았고, 호기심도 없는 편이었다. 평생 어머니가 기도로 키워서 음란에 대한 죄책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내게 일을 가르쳐 주는 대가로 좋은데(?)를 같이 가기 원했으나 거절했다. 내가 속했던 사업부는 1차 회식이 끝나면 으레 남자 선배들은 좋은 데를 가는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여자 밝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직장이었던 것이다.
그 후 나를 뽑아 준 이사님도 나를 좋은데(?)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감히 대선배의 선의(?)를 거절하는 신입이라니! 탄압이 바로 시작되었다. 선배는 나를 '융통성 없는 숙맥', '키만 큰 바보', '의욕 없는 병신' 정도로 묘사하며 나쁜 소문을 여기저기 지속적으로 내고 다녔다. 이렇게 되면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 1년쯤 되었을 때, 옥상에서 서로 쌍욕까지 해대며 싸웠고, 나는 이직을 해버렸다.
급한 이직에 탈이 났다.
이직한 곳은 당시 꽤나 명성이 있는 외국계 회사였는데, 세련된 겉모습과 실체는 전혀 달랐다. 회식이면 폭탄주 같은 걸 돌리고, 고객접대를 위해 룸살롱도 자주 가야 한다고 했다. 연봉도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작게 준다고 했다. 같은 팀의 선배들은 괴팍한 팀장의 탄압과 괴롭힘을 못 견디고 대부분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Dung 밟았구나..."
별 수 없이 또 관뒀다. 이때부터 아주 힘든 시기가 시작되었다. 자주 회사를 관두는 이미지가 생기니 재취업이 어려웠다. 알바와 단기계약직 등 2년 반을 반백수로서, 공기업 준비하면서 보냈다.
그러다 최종합격한 곳이 철강그룹 P사다. 이곳은 한때 공기업이었던 곳으로, 공기업 문화가 많이 남아있었다.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지 않고, 영업도 갑의 위치에서 하는 경우가 많아 접대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거절 못하고 접대받다가 징계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처럼 술 안 좋아하고, 선물 등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사람을 오히려 인정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십수 년을 잘 근무하고 최근에 희망퇴직했다.
앞선 두번의 퇴사는 무엇을 의미할까?
첫 회사나 두 번째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내 정신건강은 얼마나 잘못되었을까? 아마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자존감은 바닥났을 것이다. 정신과 상담을 다녀야 했을 정도로 피폐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시도 끝에 어느 정도 몸에 맞는 회사를 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의 앞선 두 번의 퇴사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 집안형편에서는 직장을 관둬서는 절대 안 될 타이밍이었다. 관두면 바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관둘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정체성을 매일 부인해야 하는 고통이 당장에 닥칠 경제적 위기보다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 직장은 여자를 찾아 밤에 같이 돌아다니자고 했다. 두 번째 직장은 룸살롱에서 고객접대를 강요했다. 이러고 사는 건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나를 강요받으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관두고 나왔다.
자존감이 낮으면 안 맞는 회사를 견디고 산다.
"누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 다 참고 사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로 자신을 설득하고 남도 설득하려한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직장인은 자신이 느끼는 직장의 싫은 면을 어느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기를 요구한다면 이건 다른 문제다.
물고기보고 나무 위로 올라가야 월급을 준다고 하면 팔다리 없는 자신을 평생 자책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원숭이 보고 수영하라고 해봤자 평생 물고기를 부러워하다 죽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내가 물고기인지, 원숭이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떤 장소가 내게 편한지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래서 물고기 주제에 나무를 타며 평생 원숭이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나는 무능해", "나는 부족해"라는 메시지를 신념화한다.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나를 무시하는 부모, 형제, 직장을 전부 떠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할 것이다.
"어떻게 키워 준 부모를 떠나고, 형제를 떠나고,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관두냐? 당신이 내 생계를 책임질 거냐?"
반감이 들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물어보자.
"자신을 원망, 비난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그런 예를 단 한 명이라 본 적이 있는 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영혼을 갉아먹는 소리를 계속 듣고 멀쩡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친구가, 그 회사가, 그 부모형제가 오랫동안 나를 한숨 쉬게 하고, 걱정하게 하고, 비참하게 느끼게 만드는가? 과감하게 떠나자.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하는 물고기가 되라는 요구를 수용해 봤자 피차 괴롭기만 하다. 이런 관계는 지속해 봐야 정신병만 얻을 뿐이다. 그들을 내가 바꿀 수 없다면,나의 물가를 찾아 떠나는 게 우선은 맞다. 이것부터 일단 동의를 해야 다음이 있다.
어디로 떠나는가?
내 마음이 편안해 지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부터 잘 알아야 한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행사 등 여행관련업에 눈길을 주고, 여행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가르치는 직업이 좋다면, 어떤 과목이 본인이 가르치기에 괜찮을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주위에 나를 지적하고 비교하는 사람들 밖에 없다면, 그들을 만족시키려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볼 에너지가 부족하게 된다.
알아보지 않으니, 적성에 안 맞는 일을 계속하고, 자질이 없어 욕을 더 먹고, 자존감은 계속 떨어진다. 결국 이런 악순환에 갇힌 채, 불행한 시간은 쌓여만 간다.
기억하자.
지나간 시간은 1초도 되돌릴 수 없다.
먼저는 '자존감 강도'들과의 '거리 두기'부터 하자.
내 자존감을 죽이는 직장동료, 부모, 형제, 친구와 천천히 거리 두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난 너 손절이야"라고 대놓고 바로 끊는 건 어려워도, 자존감 강도들이 연락을 해와도 핑계를 대고 멀리하는 건 가능하다.
내 자존감을 파먹는 친구들은 어차피 오래갈 친구가 아니다. 반면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과 접점은 최대한 늘리면 된다. 그러다 외톨이가 된다고?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다면, 몇 년 정도 외톨이가 되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당신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좋은 책이 많다. 듣는 것은 책으로 듣고, 말하고 싶은 것은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써서 표현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소수라도 반드시 있다. 물론 나도 기꺼이 그중의 한 명이 되겠다.
신앙으로 혼자 설 수 있다.
나 역시 2년 반의 반백수 시절, 얘기 나눌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친구 삼았다. 성경말씀은 그가 내 친구라고 하셨다. 그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이 사실을 잊지 말기를 당부드린다. 믿는다면 당신은 외롭지 않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당신을 친구 삼으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요한복음 1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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