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믿음
나의 중학교 성적은 중하위권, 고등학교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정원미달로 겨우 입학한 전라도 한 시골 대학교 주변은 모두 농경지여서 비료냄새가 코를 찔렀다. 캠퍼스 낭만을 찾기에는 주위가 너무 적막했고 초라했다.
선배들도, 친구들도 공부를 못해서 여기 왔다는 열등감으로 충만했다. 근처 지역에서 온 형들은 싸움꽤나 했다며 주먹자랑을 해댔다.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떤 친구는 술만 먹으면 싸움을 했고, 어떤 형은 여자만 쫓아다녔다. 습관이 어디를 가겠는가? 고등학교 때 내내 놀던 친구들이니 대학생이 되어서도 다들 놀고 있었다.
거울치료라고 하나?
'내가 저런 수준이구나. 비싼 등록금 낭비하는 것도 모자라서, 젊음을 버리고 있구나.'
편입이라는 제도를 알고 있었던 터라, 1학년 여름방학부터 바로 일반편입을 준비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해 5군데 학교에 지원에서 모두 떨어졌다. 고작 7개월 정도의 공부로 될만한 시험이 아니란 걸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의 권유로 2학년 복학 후 3학년 편입으로 재도전을 결심했다.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 학점도 전형에 포함되기에 수업도 열심히 참여해야 했다. 그해 겨울 인서울 대학 3군데에 지원에서 2군데 합격하였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생애 첫 성취였다. 이후로 나는 마음먹은 일마다 대부분을 해냈다. 토플 점수를 따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고, 원했던 대기업 해외영업부서 입사해서 많은 나라로 출장을 다녔다. 미래를 위해 주식투자도 열심히 했고, 성과가 꽤 있었다. 최근에는 캐나다에 있는 MBA 석사프로그램에 합격해서 온 가족이 곧 유학을 간다. 안되면 될 때까지 했다.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면 결국에는 이루어졌다.
이런 얘기들, 자랑하려고 꺼낸 것이 아니다.
노력하면 된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믿음을 얘기하고 싶어서 이다.
믿음으로 사람을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었다고..." 그래서 "노력하지 않는 자는 한심하다"라고 한다. 하지만 큰 성취 뒤에는 반드시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믿어주는 마음이 있다. 그 큰 성취만큼 커다란 희생이 있다.
세상에서 어느 분야든 1등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라. 적어도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은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격려하며 키웠다는 걸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내내 하위권 성적에,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능성적은 반에서 꼴찌인 아이의 미래를 어느 부모가 누가 믿을 수 있나?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성적으로 나를 나무라신 적이 없다. 그게 굉장한 믿음이고, 인내고, 절제고, 사랑이라는 것을 자식을 키우며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의 성적을 믿지 않았고, 아들인 나도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었다.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이 언제가는 아들에게 복주실 것을 굳건히 믿었다.
볼 수 없지만 아들의 장래를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눈에 당장 보이는 현상, 즉 아들의 처참한 성적은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성경에 근거하여 볼 수 없는 것을 믿어버린 것이고, 나는 그 믿음에 설득되었고, 형성되어갔다.
믿음에는 자력이 있다.
더 강한 믿음이 약한 믿음을 설득한다. 나 역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구실하고 살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밤낮없이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너를 크게 사용하실 거야!"라고 응원하고 믿어주니 그 믿음으로 내가 이끌리어 가게 되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사소한 방황도 미안했고, 작은 죄도 크게 느껴졌다.
만약 이 엄마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내 엄마라면 나는 내가 지금 해낸 만큼 해낼 수 있을까? 0.1초 망설임이 말할 수 있다. 절대 없다. 반대로 이 엄마를 다른 친구가 데려가면 잘될까? 당연히 내가 아닌 그 친구가 잘 될 것이다.
아무리 무능해도, 진정으로 믿어주면 누구라도 강해진다.
-아빠는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