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대학시절에 만났다.
아내는 대학 졸업반, 나는 복학 후 한창 교환학생으로 미국 갈 것이라고 애를 쓸데였다. 그녀는 의상학 전공이라 옷도 잘 입고, 키도 컸다. 내 눈에는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데이트를 할 때, 문득문득 어두운 낯빛을 볼 수 있었다.
어딘가 그늘진 느낌을 애써 문제 삼지 않았었다. 난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고, 우울한 배경이 있다 해도 사랑으로 다 녹일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번을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다 우리는 결국 결혼에 이른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하나님을 굳세게 믿고 말과 행동이 온화진 터라 아내는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혼 초에는 비교적 원만했으나, 아이가 나오고, 맞벌이를 하면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회사와 육아로 지쳐가던 우리는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자주 싸웠다. 첫째 아이가 학교 적응을 못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 오는 일이 잦아지자, 결단을 해야 했다. 둘 중 한 명은 풀타임 주부가 되어야만 했다.
휴직을 하고, 아빠주부가 되었다.
처음으로 하는 살림도 어색했지만, 아이 둘을 정서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받쳐 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사고가 끊이지 않으니, 내 감정도 천당과 지옥을 수없이 오갔다. 수십 번을 울고, 수십 권을 책을 읽으며, 나는 단련되어 갔다.
이 불행한 결혼을 끝내는 방법, 아이의 정서적 불안정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우리 부부가 싸우지 않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순전히 싸우지 않기 위해 아내에게 매일 아침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제안한다. 그렇게 시작된 예배는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예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내의 학창 시절이 얼마나 우울했는지를 듣게 되었다.
아내가 어두운 낯빛은 부모님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아버지의 이른 퇴사로 가정경제가 기울고, 이후에 벌린 주식, 사업등 줄줄이 망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졸업한 장인장모님은 아내 성적에 만족하지 못했고, 수용받지 못하는 상태로 아내는 어른이 되었다.
우울해도 괜찮아...
새로운 시도를 불안해하고, 장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선 회피부터 하려고 하는 아내의 성향은 나와는 정확하게 반대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나를 응원해주기는 커녕, 찬물을 끼얹으니 서운하고, 그녀는 일을 벌려 불안하게 하려는 남편이 서운하다.
'우리가 과연 헤어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마저도 들었다. 하지만 아내가 오랫동안 슬퍼했던 이유를 알게되니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용납받고, 수용받는 느낌으로 큰 것이 아니기에 아내에게 미안했다.
"나는 뭐라고 이렇게 당당하고, 너는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아파야 하니...?"
"무엇하나 고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너는 빛이 나며,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야."
"너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인데...너도 격려를 받고 자랐다면 하고 싶은 것들, 맘껏 추구하며 살았을 텐데... 우울해도 괜찮아.. 슬퍼해도 괜찮아..."
아내의 성장환경에서는 들어보지 못했을 말이었을 것이다. 여태껏 응원받지 못한 삶이니까 나라도 그녀의 인생에 빠진 부분을 메꿔 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사람은 믿음으로 변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난 분명히 믿었다. 아내 안에 분명히 하나님이 있고, 아내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비관적이고 부정적이 태도가 그 속성일 수가 없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이다. 화평이다.
자기가 자신을 싫어하는 상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계속 믿어주면, 아내의 마음은 건강한 방향으로 변해 갈 것이라고, 마치 물리법칙 처럼 믿었다. 긍정나무에서 부정열매가 열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7절
이 믿음은 아내를 향한 내 태도부터 변화시켰다. 이전 보다 부드럽게 말하게 했다. 이 믿음은 격려와 응원의말을 더 자주 할 수 있게 도왔다. 또 아내가 불안해하는 감정들을 존중하려고 애를 쓰게 했다. 크고 작은 삶 속의 작은 변화들, 모르긴 해도 아내는 분명 느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진짜 믿고 있구나...변하고 있구나..."
옳은 것이어야 굳게 믿을 수 있고, 굳게 믿어야, 내 자신이 변한다. 그래서 그 변화(행위)가 가족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자석이 된다.
1년, 2년, 3년... 아내가 변해갔다.
아내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여자는 외모는 같지만, 같은 사람 같지 않다. 아내는 나와 매일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성경에 있는 소망의 말씀들을 매일 필사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요즘은 내가 낙담하거나 할 때, 오히려 격려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기도해 주고 괜찮다고 말해준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이다.
물론 우리 부부도 아직 서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고, 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옛날처럼 숨 막히는 느낌이 관계 속에 없어졌다. 4,5년 전 한참 힘들 때, 내가 믿지 못했다면, 그전에 육아휴직을 안 했더라면, 그전에 내가 예수님을 굳게 붙잡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그전에 우리 어머니가 신앙으로 나를 안 키웠다면, 나는 이 결혼에 있어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내와 나아진 관계 역시,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느낀다.
믿음이 태도를 만든다.
긍정적인 믿음이든, 부정적인 믿음이든 믿음은 유산이다. 가족에게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전달 된다. 믿음이 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고시에 합격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어떤 선생님에게 어떻게 배워야 할지를 고민한다. 믿지 못하면 다음 스텝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끝까지 믿어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다.
혹시 이 글로 인해 가슴에 차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끝까지 믿어보자. 반드시 행위대로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장 12절
- 아빠는 치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