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샘 Dec 24. 2023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보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니키 얼릭 지음, 정지현 옮김, 생각정거장, 2023.>



"상자를 열어보겠습니까?"


도발적인 질문이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는 상자가 있다면 그것을 열까 말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호기심에 받자마자 열어볼 수도 있고, 겁이 나서 열어보지 않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주변의 분위기와 먼저 열어본 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신중하게 열어볼 수도 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누군가와 동시에 열어보기를 제안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았지만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상자 속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


표지를 선뜻 넘기지 못하고 생각했다. 궁금하긴 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짧은 수명이 나오면 겁이 날 것 같다. 언젠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라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때론 모르는 게 약이 될 때가 있는 법. 나는 내 수명이 들어있다는 상자를 받으면 열어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소설 속 인물 중에도 나처럼 상자를 열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가 있다. 그녀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궁금한 만큼 소설에 빠져들게 된다. 흥미롭다.


상자 속에는 자신의 수명의 길이를 알려주는 끈이 들어 있다. 길거나 혹은 짧은 끈. 짧아도 그 정도가 제각각이니 눈대중으로도 누가 더 오래 살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긴 끈들 사이에서 자기만 짧은 끈을 받는다면? 중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는 사람들의 심정이 그와 비슷할까? 퀴블러 로스가 말하는 죽음의 단계에 따라 끈 길이가 내 생명을 의미하는 건 아닐 거라고 부정하다가, 왜 하필 나냐고 분노하다가,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무릎을 꿇고, 곧 죽을 덧없는 인생이라며 희망도 없이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죽기 전에 그래도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며 자신과 주변을 살피게 될까? 경험하지 못했으니 상상할 수밖에. 이 소설이 주는 매력도 그런 맥락에 있다.


야흐로 세상은 빅테이터 시대. 죽는 이와 그의 끈 사이의 관계에 대한 데이터가 쌓일수록 수명은 더 정확하게 예측 가능하다. 상자를 열어봤다면, 특히나 짧은 끈을 받았다면 곧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긴 끈이 건강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모한 행동을 하다 장애를 입고 힘들게 장수할 수도 있다. 짧은 끈이 불행을 암시하지도 않는다. 예정된 죽음의 시간까지 그간 미루어두었던 더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는 계기가 된다. 다만, 늙어서 죽지 않으니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지 몰라 불안하고 두려울 수는 있다. 이 점이 내가 상자를 열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불시에 죽음이 다가와도 그전까지는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짧고 굵게 살기를 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가늘어도 오래 살기를 희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을 원하든 자신이 죽는 날을 선택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언젠가 죽게 된다는 것. 죽음을 뚜렷이 인식할수록 지금의 삶이 더욱 소중해진다. '메멘토 모리'가 재미있는 스토리로 마음에 스며든다.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수명이 짧다고 상상하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죽음을 인식할수록 삶에 더 충실해질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반대말이 아니다. 잘 죽고 싶다면 잘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과 친해져야 한다. 내가 죽음을 공부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 괜찮은 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