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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ntos 1 26화

일타강사의 꿈

수학 강사 정승제

by 아름다움이란

학창시절 수학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절대 올라설 수 없는 높은 산이었다. 고지에 무탈하게 오르기 위해서는 착실한 준비운동이 필요하기에 준비운동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과서의 문제를 풀었지만 처음 보는 유형 앞에서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학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이었다는 것이 나의 수학 실패의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칙연산만 한 줄 알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리며 어려운 함수와 미적분을 회피하다 보니 결국 수학과의 거리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만 갔다.


수학은 양치기라는 말도 있지만 양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선택과 결정을 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주도적인 힘을 기를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 수학의 본질이라는 전공자들의 말에 학창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매력을 느낀다. 함수문제 하나도 이제는 풀 일이 없어진 나에게 수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려준 이가 있다.


승제의 어릴 적 꿈은 가수와 야구장 응원단장이었다. LG팬으로 야구장을 찾을 때면 손가락 하나로 경기장의 분위기를 지휘하는 단장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공부도 곧잘 하는 아들을 학군지에서 키워보겠다는 어머니의 결정으로 중학교 때 강남에 입성했지만 무서운 수학 선생님을 만나면서 성적은 50점대까지 곤두질 했다. 그래도 수학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남아있어 보충을 원했으나 과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형편은 아니어서 비용이 저렴한 학원을 선택했다. 두근대던 첫 시간 멋있게 걸어오시더니 자신을 괴롭혔던 수학 개념을 단박에 이해시켜 주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수학강사라는 직업에 처음으로 관심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 만난 은사님 덕분에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았고, 타고난 유전자보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공부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강사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고 작은 학원에서부터 경력을 쌓았다.


제대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자신의 노하우를 담아 일일이 손글씨로 교재를 제작했다. 우연히 자신이 존경하는 스타강사가 제자를 모집한다는 인터넷 공고를 보게 되어 교재를 들고 무작정 강사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떠난다. 갈까 말까 할 때는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결심으로 떠난 부산행이 현재의 자신을 만든 시작점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이투스 소속의 대표 강사이지만 2009년부터는 EBS에서도 강의를 시작했다. 사설교육기업에 종사하는 강사가 EBS에서 강의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를 줘야 하고 수포자를 구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의를 받아들여 현재까지 좋은 강의를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성실한 삶의 자세를 가진 학생을 더 많이 칭찬하고, 게으른 천재에게 차가운 독설을 퍼붓는다. 머리가 좋다는 것이 사람이 가진 얼마나 하찮은 하나의 능력에 불과한 것인지를 깨우치지 않으면 절대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지금껏 성실하게 한 계단씩 오르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결과가 좋든 그렇지 않든 노력의 과정은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격려한다.


그런 그가 가수라는 옛 꿈에 도전하여 싱글앨범을 출시하고, 얼마 전 복면가왕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사는 것이 그가 가진 재력 때문이라고 곱지 않게 보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돈의 힘이 아닌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마음속에 품었던 가수의 꿈은 포기한 것이 아닌 잠시 뒤로 미루어 둔 것이었고, 부족한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틈틈이 보컬트레이닝을 받았다. 아직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 결국 남 앞에서 노래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잠시 밀리는 것뿐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잘하겠다고 욕심내지 말고 차곡차곡 쌓아뒀던 꿈들을 하나씩 꺼내는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수학의 명제를 증명하지는 못하더라도, 꿈을 가꾸며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는 증명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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