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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Mar 20. 2024

내 꿈은 초록지붕집에 사는 것

지극히 사적인 나의 취향

요즘 나의 최애 프로그램은 

<EBS 건축탐구 집>이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프로그램 속에서 소개해 주는 집들을 보고 있자면 언젠가는 나도 주택살이를 해보리라 라는 마음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괜히 옆에 있는 남편에게 우리는 언제쯤 주택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하고 옆구리를 콕콕 찔러본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평생 주택에 살았다. 어린 시절에 아파트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 갔었는데, 한겨울이었음에도 집이 덥다며 반팔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따뜻했다. 오래된 주택인 우리 집은 외풍 때문에 코 시림은 기본이요, 한겨울에도 양말과 내복은 필수였는데 말이다. 옷을 갈아입으려면 차가운 면이 몸에 닿는 것이 싫어서 이불속에 갈아입을 옷을 좀 미리 묻어 두었다가, 따뜻해지면 그제야 입는 생활의 지혜는 필수였다. 형편 따라 이사도 자주 했으므로 화장실이 집안에 없는 집에도 여러 해 살아 보았다. 


그때 생각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아파트에 살아야지 하고. 


 결혼을 하고, 첫 우리 집은 지하철역이 바로 앞에 있는 신축 아파트 전세였다. 평수는 크지 않았지만, 아파트는 참 쾌적하고 좋았다. 관리비만 부담하면 해결되는 일들이 많았고,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면 궂은날에도, 아무리 춥고 더운 날에도 힘들이지 않고 집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집 밖에 나가면 잘 정돈된 도로와 늘어선 상가들도 참 좋았다. 한겨울이 되어도 집에서 코가 시리지 않고,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우리의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을 때에도 아파트의 편리함덕에 주택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이사를 했다. 


그러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주택살이에 대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절정이던 무렵에 나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엘리베이터 타는 일조차도 내키지 않아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며 집안에만 머물러있었다. 작은 집안을 뱅뱅 돌다 잠시 창문밖으로 내다본 바깥 풍경은 차들이 쌩쌩 다니는 너른 도로와 건너편 아파트 창문이 전부였다. 


 그때 참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했다. 단 한평이라도 내 맘대로 다닐 수 있는 흙과 풀, 나무가 있는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그래서 정말 이사를 할 요량으로 몇 가지 조건을 앞세워 주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1. 아이를 키우기 적당할 것 

2. 너무 도심도 아니지만 너무 외지지도 않을 것 

3. 남편 출퇴근이 용이할 것 

4. 우리 예산에 맞는 곳일 것 


 그렇게 몇 날 며칠 검색을 하다 타운하우스 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찾은 도심의 타운하우스는 최소 2층 많게는 4층까지 지어진 집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망설여진 부분은 바로 계단, 부실한 내 무릎으로 매일 그곳을 오르 내기 기란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그렇다고 아이를 키우기 적당한 인프라가 있으면서 도심과 가까운 곳에 단층 주택은 애초에 우리 예산에 맞지 않았다. 많은 조건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고 적당한 곳을 발견하지 못해 마음을 접어 두었다. 그래도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실행을 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오늘도 주택살이를 꿈꾼다. 그래서 <건축탐구-집>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는 요즘이다. 이렇게 지을까 저렇게 지을까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본다. 어린시절 아파트는 성공한 어른의 지표였는데, 돌고돌아 다시 주택을 꿈꾼다.

 

 남편에게 "여보 근데 주택 살면 벌레도 많고, 할 일도 많잖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우리 괜찮을까?" 하니, "벌레는 잡으면 되고, 안되면 세스코 불러. 추위 더위는 돈 많이 들여서 단열 잘 되는 집 지으면 되지." 하고 명쾌한 답변을 하는 남편. 아 그러네 그럼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겠구나 ㅋㅋ 하고 웃어 본다. 이런저런 제약들과 단점들을 꼽자면 사실 주택은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나 빈약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은 이유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중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내 집에서 꾸려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따뜻하고 햇살이 잘 드는 마당 있는 집에서 햇볕샤워 하며 좋아하는 커피도 한잔 내려, 그림도 그리고 책도 실컷 읽어야지. 작은 공방도 하나 꾸며서 가구도 만들고 도자기도 만들고, 미싱도 하나 들여놔야겠다. 마당 한켠에는 수국도 심고, 튤립도, 후리지아도 심어야지. 초록초록 제철 채소들 심어서 오이도 따먹고, 고추도 따먹어야지. 배추랑 무우도 심어서 김장도 해봐야 겠다. 어린시절 만화에서 보았던 빨간머리앤의 초록지붕집 같은 집 다락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며 생생하게 그렇게 살아야지.


출처 : 빨간 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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