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나의 취향
우리가 처음 주말농장 텃밭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지 한 달 여가 되어간다. 5월 말 뜨거운 초여름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시장에서 구매한 모종들을 정성스레 밭에 옮겨 심었다. 모종들도 더운 날씨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하나같이 힘없이 축 쳐졌다. 솔직히 나는 속으로 이게 자라긴 할까? 모종값만 버리는 거 아니야?라는 마음이 들었다. 특히 노지에서 키우는 상추는 햇볕이 너무 뜨거운 여름날에는 모종이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넉넉하게 9 포기를 사다 심었다.
예상대로 두 포기는 자리잡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다 죽어버렸고, 나머지 상추 모종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한 달 후, 우리 집 냉장고는 상추마를 날이 없게 되었다.
나는 상추가 이렇게 빨리 잘 자라는 채소인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내게 상추란 그저 고기 먹을 때나 가끔 찾는 쌈채소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나는 상추보다는 깻잎쌈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 묶음에 열 장 남 짓든 상추도 다 먹지 못하고 물러서 못 먹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상추를 이렇게나 많이 심은 걸까? 그저 밭을 가꿀 의욕만 앞설 뿐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밭에서 상추를 수확하고 아직 다 먹지도 못했는데 새 상추가 리필되었다. 한 달 남짓한 시작이지만 나의 노동력이 들어가서 인지, 이대로 물러서 버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지런히 상추 보관하는 법, 먹는 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 밭에는 농약을 전혀 치지 않기 때문에, 밭에서 따온 채소들에는 발이 많이 달린 작고 귀여운 친구들이 함께 할 확률이 매우 높다. 곤충들이 미래에 대체 식량자원으로 뜨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직접 눈으로 보고 먹을 정도로의 마음의 준비는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최대한 꼼꼼하게 채소들을 손질하고 씻어야만 한다. 진지하게 채소를 세척하는 세척기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그럴 거면 직접 키워먹지 말고 세척된 채소를 사다 먹지 싶어서 마음을 접었다. 흐르는 물에 꼼꼼하게 세척을 식초물에 담가 나름의 소독과정을 거치고 물기를 탈탈 털고 밀폐용기에 차곡차곡 담으면 1차 미션이 끝이 난다.
그러면 이제 먹어치울 차례다!
가장 기본이 되는 고기쌈을 시작으로 모든 음식을 상추쌈을 해 먹기 시작했다. 비빔면을 먹을 때에도 떡볶이를 먹을 때에도 상추와 함께하며 일련의 죄책감을 덜어냈다. 매운 음식과 상추의 조합이 나쁘지 않고 괜찮았다. 상추를 듬뿍 깔고 김밥도 싸 먹고,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는다. 반 강제로 1일 1 샐러드도 실천하게 되었다. 상추전도 해 먹는다기에 난생처음 상추전도 부쳐 먹어보니 바삭하고 맛이 괜찮았다. 이젠 하다 하다 루꼴라 대신 홈페이드 피자에 상추를 올려먹기까지! 이 또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면 이 호사도 누리지 못할 테니이 순간을 감사하게 여겨 보기로 한다.
아주 작고 연약한 식물 모종 하나가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물과 바람 햇볕을 받으며 자라 쉬지 않고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흙이, 자연이 주는 선물이 참 신비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이 넉넉함을 오래 느끼며 살고 싶다. 얼떨결에 시작한 나의 지극히 사적인 취향 하나가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