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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주 Aug 12. 2021

선생을 위로하는 학생

어른보다 낫다

      


이번 학기는 코로나19로 인해 학년별 등교 시간이 달라 수업 시간 공백이 크다. 1, 2마당 수업 마친 후 1시간 30분 쉬었다 3마당 수업을 한다. 5, 6학년들이 11시에 등교해 3시 40분에 마치는 일과라 도리가 없다. 중간에 하릴없이 비는 시간에 교실 청소하고 서류 정리하고 혹여 시간이 되면 저녁 수업 준비도 하는 시간. 바쁘게 3시간 연이어 수업하는 것보다 에너지 관리 측면에서도 좋다. 오늘도 2번째 수업 후 청소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빠져나가면서 “선생님 이런 건 너무 하는 거 아녜요?”한 메모를 그제서야 봤다. 책상 주인인 아이가 메모를 써 붙였다. ‘낙서 금지. 낙서하면 팔과 다리를 바꿔버림. 평생 저주할 거임. 누군지 알아내서 끝까지 괴롭힐 것임. 목구멍에 구정물을 부을 거임.’ 이런. 더한 욕설도 있고, 얌전한 안내글도 있다. 아마도 저희들 하교 후 다른 학생들이 교실에 와서 수업한다니 자기들 책상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썼음은 알겠는데, 기분 좋을 리 없다.      



우리 아이들이 했는지 안 했는지 상관없이 지우개 들고 책상 위 연필 자국을 지워나갔다. 내 수업을 들어오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듣는 건 싫으니까. 청소 끝내고 3마당 수업 활동지 복사하러 가는데 아현이가 들어온다. “독서논술 학생들이 책상에 낙서할까 봐 애들이 메모지 붙여놓고 갔어요.” “그러게 말이다. 아현아. 그랬더라고. 알다시피 우리 친구들은 그런 행동하지 않는데. 혹여 걱정이 되었더라도 예쁜 말로 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게 좋았을 텐데. 나쁜 말 많이 써놓아서 속상해.” 대답하고서 복사하러 교무실로 내려갔다 왔다. 아현이가 친구 혜솔이와 함께 엎드려서 뭔가 쓰고 있다. 노란 포스트잇이 책상 곳곳에 보인다. “논술 선생님께서 속상해하셔서 내가 땠어. 애들이 낙서도 안 하더라고. 이제 붙이지 마.” 손글씨로 하나하나 써서 붙이는 중이다.  




어쩜,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책상에 유리테이프 덕지덕지 붙여서 꼼꼼하게 붙인 메모지를 다 떼어낸 그 자리에 제 마음을 쓴 포스트잇을 붙였다. 반 친구들이 한 행동에 속상해하는 선생 마음 달래느라 포스트잇에 일일이 써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하고,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는 건 더 기특하다. 아현이가 쓰는 걸 보고 혜솔이도 함께 쓰다니 두 친구 우정도 예쁘다. 기분은 나빴으나 아이들이 붙인 메모지를 떼어낼 수도 없어 보기만 하고 책상 위만 박박 지웠는데 그런 선생 마음을 읽은 어린 제자 마음이 감격스러워 연이어 감탄만 할 뿐이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고 책상 위 메모를 발견한 아이들에게 좀 전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엔 같은 학년 친구인 소현이가 아현이 책상에 메모를 남겼다. “아현아, 나 소현이야. 독서논술에서 어린애들이 낙서하고 있으면 내가 말할게. 그리고 독서논술 선생님이 너한테 엄청 고맙데~^^”    



 

수업이 끝나고 4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상황을 설명하고 아현이 행동을 세심하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썼다는 것에 난색을 표한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했고,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아이들 잘못된 표현이 아니라 선생님과 나의 학생, 아현이가  어여쁜 행동임을 콕콕 짚어서 누차 강조했다. 내일 아침 교실에서 만날 아현이에게 듬뿍듬뿍 칭찬 샤워해 주시라고. 나무랄  없는 학생 아현이라고, 역시나 아이들에게 우린 자주 배움을 일으킨다고, 오늘 처음 만난 선생님과 나는 둘이 마주 보고 서서 공감했다. 귀갓길엔 아현이 어머니와 통화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미한 일은 없고, 온전히 나쁘거나 온전히 좋은 일은 없다. 표현이 과격한 아이들 덕분에 예쁜 표현이  빛을 발했고, 함께 수업한 시간이 쌓여 어린 학생이 나이  선생을 위로하는 일도 생긴다. 기분 나쁘다 말았을 일인데 선한 마음이 일으킨 행동 덕분에 오히려 두고두고 떠올릴 따스한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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