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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Feb 13. 2024

행복을 배우는 아이들

아빠 온다. 얼른 숨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이 현관 번호키를 누르면 아이들은 후다닥 숨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빠를 만나기도 전에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쌍둥이인 남편은 어릴 때부터 동생과 온갖 기발한 놀이를 개발하여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상상의 놀이를 만들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열심히 놀아주었다. 어떨 땐 본인이 더 즐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출장을 가고 나면 재밌게 놀아주는 아빠가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아빠가 번호키를 누르는 순간 갈등을 시작한다.

아빠에게 달려갈 것인가, 숨을 것인가.


 그날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좀 더 특별한 식사를 준비했다. 아이들과 힘을 합쳐 주방 벽에 붙어 있던 식탁을 거실 가운데로 옮겼다. 꽃이 담긴 화병도 올려놓고 특별한 날만 꺼내는 황금빛 식탁매트도 깔았다.


올리브유와 타임, 소금, 후추로 미리 재어둔 소고기를 굽고 양파, 당근, 아스파라거스를 가니쉬로 담았다. 매실주스를 고블렛 잔에 담아 화이트 와인인양 멋을 부렸다. 리코타 치즈를 올린 샐러드와 김치를 식탁가운데에 놓고 커트러리도 가지런히 놓았다. 장식장에 있던 은빛 촛대 위에 초를 올리고 불을 붙였다. 고급레스토랑 못지않은 근사한 저녁 식사가 완성되었다.


 접시를 하나씩 들고 식탁으로 나르던 아이들의 발뒤꿈치가 들려있었다. 조심조심. 접시를 테이블 위에 하나씩 놓을 때마다 기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폴짝폴짝 뛰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삐삐 삑 드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남편은 쥐 죽은 듯 조용한 거실에 로맨틱한 스테이크 상차림을 봤을 것이다.

" 와 ~ 맛있는 거 차려놓고 다들 어디 갔어?"

남편은 숨어있는 우리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흩어져 숨어있던 내 귀에 푸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아이들을 찾았으니 나는 내 발로 나가본다.


"아빠, 이거 우리가 엄마랑 같이 차렸어요. 예쁘죠?"

"고마워. 고마워. 우리 아들 딸 최고다."

칭찬샤워를 받은 아이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붙어있다.

"자 우리 건배할까?"

매실주스가 담긴 고블렛잔을 쨍 부딪혔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던 남편이 내 귓속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나 사실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는데."

"......"

그때 먹었던 음식의 맛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행복한 감정과 웃음소리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서프라이즈와 분위기는 즐겼으니 그날 이후로는 무조건 김치찌개를 준비했다.


 아이들 둘만 집에 두고 볼일을 보러 나갔다.

아들에게 동생과 사이좋게 놀고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 구청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없었다.

신발도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 깜짝 놀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우연히 식탁에 있는 뭔가에 눈이 갔다.


 접시 위에 각종 과자와 냉장고에 있던 과일이 하트모양, 동그란 모양, 네모난 모양 등 각종 모양을 이루며 예쁘게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나를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구나. 아이들의 깜찍한 이벤트에 웃음이 나왔다.

"어? 다들 어디 간 거야?"

어설픈 연기를 하며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웃음을 지 못한 아이들은 큭큭 소리를 내고 베란다에서 튀어나왔다.


"와~ 이거 엄마를 위해서 준비한 거야? 너무 예쁘게 차렸다. 감동이양."

"네~ 이거 내가 동생한테 하자고 했어요. 잘했죠?"

세심한 첫째에게 듬뿍 칭찬해 주자 귀여운 둘째가 옆에서 거든다.

"신발은 내가 숨겼어요. 엄마, 근데 우리 엄청 오래 숨어있었어요."

아이고 얘들아, 힘들게 왜 그랬어.

남편이 나에게 해 준 서프라이즈 파티를

아이들과 내가 남편에게 다시 돌려주고

그걸 본 아이들이 나에게 다시 려준 행복의 선순환.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배우나 보다.

세심하게 행복할수록 더 자주 행복하다고 했던가.

아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도 행복을 주고 싶었던 아이들의 사랑이 기특하고 감사한 날이었다.

아들이 2학년, 딸이 7살이었던 그 시절

행복하는 법을 배운 아이들이 내게 더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준 날이었다.

나눌수록 배가 되는 행복의 수학을.


한 줄 요약 :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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