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손을 잡는다는 건 연결이었다.
서로의 삶을 소리 없이 연결하는 마음이었다.
삶에서 손을 잡는다는 건 신뢰의 표현이었다.
당신이 가는 길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몸짓이었다.
삶에서 손을 잡는다는 건 보이지 않게 이어진 탯줄이었다.
엄마와 아기가 탯줄로 이어지듯
삶의 정수를 전하는 위대한 공유였다.
삶에서 손을 잡는다는 건 삶의 체온을 느끼는 것이었다.
당신이 가진 삶의 온도를
손과 마음으로 느끼는 촉감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나이 들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처음 봤던 순간이
무화과 열매의 과육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유방암 수술 후 요양을 위해 엄마가 실버타운에 들어가셨을 때 아버지와 엄마는 한 달에 두세 번 만나셨다. 내가 엄마를 보러 실버타운에 내려가면 아버지도 그곳으로 오셨다.
셋이서 점심 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나왔을 때
낮은 계단 앞에서 머뭇거리는 엄마의 손을
아버지는 가만히 잡아주셨다.
노부부는 손을 꼭 잡은 채로 '여보, 잘 지내소.' 덕담 한 마디씩을 남겼다.
평생 티격태격하던 부모님도 떨어져 지내시니 만날 때마다 조금씩 애틋해졌다.
마음속에 무지갯빛깔을 머금은 비눗방울이 부풀어 오른다. 한없이 가볍고 아름다워진 비눗방울이 내 속에서 둥둥 떠올랐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건
부부의 전 생애 중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이었다.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노부부를 마주친다.
할머니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속도에 맞춰 걷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굽은 허리에 배려해 걷고.
삶에서 손을 잡는다는 건 삶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을 잡고 걸어갈 때 할머니 얼굴을 봐봐.
할머니 얼굴이 굉장히 편안해 보이셔.
할아버지가 잘해주시는 거야.
그러니까 저렇게 손을 잡고 다니시지.
우리도 내가 잘해주니까 이렇게 손 잡고 다니는 거잖아.
영화 노트북에서 죽음을 앞둔 노아와 앨리는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눈을 감는다.
삶에서 손을 잡는다는 건 결코 당신을 놓치지 않겠다는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