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안 하는 문화 속에서도 기부하는 이유

나누는 기쁨

by 리인

얼마 전 영어회화 커뮤니티에서 기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IT 회사를 운영하는 회원분은 자신의 거래처 사장이자 자신의 친구가 하는 봉사활동에 매달 몇십만 원을 기부한다고 했습니다. 친구 분은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무료 IT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많이 나누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장성한 자식들에게도 기부를 독려한다고 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버킷리스트에 기부하며 사는 삶을 적었지만 고작 아동 한 명을 13년 동안 후원하고 있는 것에만 그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올해 초 '한국 기부문화가 119개국 중 88위이며 기부 참여율도 10년간 하락하고 있다'는 뉴스 기사를 접했습니다. 영국 자선지원재단 CA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119개국 중 8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2021년에는 110위로 사실상 꼴찌에 가까웠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 순위는 기부 선진국인 미국(3위)이나 호주(4위)는 물론 중국(49위)보다도 한참 낮았습니다. 기부 참여율도 2011년 36.4%에 비해 2022년에는 21.6%로 떨어졌습니다.

우선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기부에 인색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내가 기부한 돈이 꼭 필요한 곳에 투명하게 쓰이는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기부자가 알 수 없는 구조와 이따금씩 터지는 기부금 횡령 사건도 기부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더 많은 사람의 기부를 끌어낼 수 있겠지요.


둘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세제 혜택입니다.

빈민촌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자수성가하여 200억대의 자산가가 된 황필상 씨는 2002년 자신이 운영하던 수원 교차로의 200억 상당의 주식을 장학재단에 기부합니다. 그로부터 14년 후 증여세와 미납 추징금등을 포함해 240억의 세금을 내라는 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황필상 씨는 이 황당한 세금 추징에 맞서 소송을 진행하다 결국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기부로 인한 세제 혜택이 최대 30% 정도로 오르기는 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많이 낮은 편입니다. 미국은 개인 기부금에 50% 소득공제율을 적용하고 있고, 영국은 개인 기부액의 20~45%를 소득공제합니다. 일본도 40%의 높은 소득공제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호주는 대가를 받지 않는 증여형 기부에 대해 기부 금액 한도 없이 소득공제가 가능합니다. 기부도 하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면 누가 통 큰 기부를 하고 싶어 할까요?


셋째는 비교적 좋아진 복지제도에 대한 인식입니다. 미국만 해도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고 어느 도시든 홈리스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초수급생활자가 되면 일정 금액을 정부로부터 보조받을 수 있어 기초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누리는 안전장치는 어느 정도 되어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이 많은 게 현실이죠.


얼마 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올해 46억 4000만 달러(약 6조 389억 6000만 원) 상당의 자사 주식을 자신의 가족이 만든 5개의 자선단체에 추가로 기부했습니다. 버핏이 2006년 이후 자선단체에 기부한 액수는 510억 달러(약 66조 3765억 원) 이상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지요. 그 외에도 빌게이츠나 마크저커버그가 기부재단을 만들어 통 큰 기부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산가들이 통 큰 기부 행렬에 동참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선의와 소득 공제 혜택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만든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또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직접 기부를 실행하면서 원하는 분야에 기부를 할 수 있는 장점을 잘 활용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서 재산의 60%를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생전에 소장했던 미술품을 기증했고 소아암 희귀 질환 지원에 1조 원의 기부를 약속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 큰 기부를 행하는 자산가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 와중에 증여세만 14조라고 하는데 백만 원도 크게 느껴지는 저에게 14조는 어느 정도의 돈일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연말이면 익명의 기부 소식이 들립니다. 경남 거창에서 14년째 쌀 20kg 20포를 면사무소에 놓고 가면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분이 계십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받았던 도움을 생각하며 어려운 분들에게 꼭 필요한 게 뭘까 고민하다가 쌀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올해 9월 어떤 여성분은 수원 광교의 주민센터에 고무줄로 꽁꽁 사맨 5천만 원을 든 종이 가방을 놓고 사라졌습니다. 생활비를 아껴 적금을 들었다며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가정을 위해 써달라는 편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이런 따뜻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기부는 돈이 많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와줄 따뜻한 마음과 나눠줄 넓은 마음만 있으면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따거 주윤발 배우도 사후에 전 재산 810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찬사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아직도 자가용 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그의 손에는 17년 된 휴대폰이 들려있다고 합니다.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부는 하되 검소하게 생활하는 세 분의 모습이 닮은 듯합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주윤발 등 우리에게 알려진 통 큰 기부 천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늘 웃는 인상을 가지고 나누면서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시대를 잘 만나서 큰돈을 벌었으니 그 돈을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을 때 그 돈을 지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더 큰돈으로 더 큰 행복을 추구하다가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도 봅니다.

가난하건 부자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익명의 기부천사와 유명한 기부자와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을 때는 받는 순간이 가장 기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는 나누어 주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행복해집니다. 나누기로 결심하고 지속적으로 나누어 주니 행복이 계속 유지됩니다. 나누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저도 체험해 봐야겠습니다. 제가 자란 동네에는 보육원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그곳에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올겨울에는 꼭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한 줄 요약 : 뭔가를 받을 때는 받는 순간이 가장 기쁘지만 나눌때는 나눔을 결심한 순간부터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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