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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Dec 21. 2023

행복을 위한 마음씀 순간을 한 겹 쌓다.

두 개의 케잌

지난주 금요일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21년째 되는 날이자 고등학생인 딸아이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었다. 실은 딸의 시험 해방 선물로 펜션 예약을 끝내고 나서야 그날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임을 알게 되었다. 올해 결혼기념일은 가족여행으로 퉁치나 보다 생각하다 그래도 딸에게 "우리 여행 가는 날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야."라며 귀띔은 해주었다. 나중에 안 챙겨줬다고 삐치지 말고 미리 얘기해서 서로 행복해지자는 원칙에 따라.


 아들은 이번 가족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다. 10개월 동안 일했던 주말 아르바이트를 이번 달에 그만두게 되었는데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라도 빠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루쯤 빠지는 건 괜찮지 않냐며 아무리 설득해도 '사장님께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쇠심줄같이 질긴 결의를 보였다. 가게에서 손님들이 사장님 아들이냐고 물어보곤 다는데 이럴 땐 진짜 내 아들이 아니라 사장님 아들 같다. 아르바이트에 이렇게 진심이라니.


 딸은 펜션에 가서 엄마, 아빠를 위해 케잌을 사겠다고 했다. 이번 펜션은 스파와 바베큐가 가능한 다목적룸이 딸려 있는 곳이었다. 대신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에 베이커리는커녕 마트 찾기도 힘들었다. 딸에게 케잌 사는 건 내일로 미루자고 했다.


 다음 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딸과 함께 집 앞 베이커리에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프레지에 케잌과 샴페인 한 병을 골랐다. 내가 고르고 딸이 계산하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뿌듯했다. 아들 생각이 나서 케잌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아들~ oo이가 케잌 샀어. 오늘 퇴근하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파티 하자."

 "아... 오늘 회식인데... 내일 하면 안돼요?"

많고 많은 날 중에 하필 오늘 회식이라니. 그래, 아들은 우리가 펜션 가서 케잌을 먹은 줄 알고 있으니 약속을 잡을 수도 있지.

 "그래, 그럼."

 "오키, 쏘리."

이렇게 케잌은 냉장고에서 하루 더 숙성되었다.


 다음 날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이 뭔가를 쓱 내민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눈앞의 물건을 보니 장미꽃다발이다.

"와 꽃이네. 고~마~워."

그러고 보니 남편은 결혼기념일에 항상 꽃을 선물해 줬다. 기억력이 나빠진 나는 그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꽃은 겨울엔 안 나온다고 해서 장미로 샀어. 그 꽃이름 적어둔 메모장이 날라가서  기억해 내느라 힘들었어."

"그 꽃 이름이 뭔데? 매년 결혼기념일에 사줬으면서."

"베고니아 아냐?"

"베고니아는 무슨. 리시안셔스지."

"그럼 베고니아는 어디서 나온 거지?"


 베고니아는 우리가 어제 묵은 숙소이름이었다.

 어쩜 부부가 건망증마저 닮아가는지.


 드디어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삑삑삑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우리 아들 왔어?"

"엄마, 아이스크림 케잌 사 왔어요."

"어 진짜? 00 이가 케잌 샀는데."

"내가 저 녀석한테 질 수 없지."

"오 좋아 좋아, 이런 효도 경쟁 아주 좋아."

결혼기념일이 이틀 지난밤, 두 개의 케잌를 놓고 우리가 결혼하고 얻은 두 명의 미니미들과 함께 결혼기념일을 축하했다. 케잌이 두 개여서 그런가 자꾸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 아빠의 러브스토리에 부쩍 관심을 갖는다. 어떻게 만났는지,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 고부갈등은 없었는지 궁금한 것도 참 많다. 보물보따리 풀 듯 하나씩 풀어놓는 재미가 쏠쏠하다.


 5년의 연애와 21년의 부부생활을 함께 하며 얻은 지혜는 행복도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로가 필요할 때 함께 하는 순간,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순간,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순간.

이것들을  위한 마음씀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


장미꽃이 한 겹 두 겹 꽃잎을 감싸 장미를 완성하듯  

마음씀의 순간을 한 겹 두 겹 정성스럽게 쌓아 행복을 완성해 간다.


장미 꽃잎처럼 귀한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다

오늘은 아이들이 우리를 향한 마음씀 순간을 한 겹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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