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나들이 Jan 03. 2024

스치는 인연이 스미는 인연이 될 때

좋은 어른과 리더 사이

 성인이 되어 학교에서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 중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또는 내가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으로 기억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한쪽이라도 따뜻함이 되어준다면 치유를 주는 아로마 향을 품고 사는 느낌일 거라 생각합니다.


 아들은 대학교 입학 후 지금까지 핫도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학에 가면 최소한의 용돈만 받을 수 있으니 나머지는 직접 벌어서 생활하라고 얘기했었거든요. 토, 일요일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꼬박 12시간씩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지요. 한창 놀고 싶은 나이인데 주말 내내 일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용돈을 조금 올려줄 테니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여보라고도 했습니다. 아들은 이틀 일하고 이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다며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장님 부부가 가게를 운영하시는데 두 분이 사이도, 마음씨도 좋으시다고 했습니다. 주말에는 사장님 부부는 쉬시고 아르바이트생 세 명이 일을 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말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연달아 그만두는 바람에 아들 혼자 남게 되었지요. 하필 시험기간이라 아르바이트생을 못 구해 사장님 부부와 셋이서 한 달 넘게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안 사장님이 LA갈비 같은 고급 요리를 만들어 오셨다고 해요. 기숙사 생활을 하며 늘 집밥을 그리워하던 아들이었는데 맛있는 집밥을 먹는다며 좋아했습니다. 손님들이 종종 아들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답니다.


 종일 기름 앞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온몸에 기름 냄새가 배어 걱정도 됐습니다.

"아들아, 기름을 튀길 때 나오는 조리흄은 발암물질이라던데 엄마는 네가 건강을 해칠까 봐 걱정돼. 다른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어."

"에이, 엄마 난 담배를 안 피우니까 괜찮아요. 힘들어도 금융치료가 돼서 마음이 즐거우니 괜찮아요."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갓 지은 흰쌀밥처럼 찰지게 일하고 학교도 다녔습니다.


 그러다 10월이 되면서부터는 일하는 게 조금 힘들다고 했습니다. 주중에 공부하고 주말 내내 일을 해야 하니 힘들 수밖에요. 내 대학생활을 뒤돌아봐도 아들처럼 저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방학 때나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기 중에는 학점 잘 받아서 장학금 받는 게 남는 거라며 잉여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지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도 사장님 부부가 너무 좋으셔서 망설여진다고 했습니다. 결국 감기에 독감까지 연이어 앓으며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사장님께 알리게 되었지요. 직원을 구하려면 한 달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그 뒤에도 한 달 더 일을 했습니다. 곧 그만둘 건데 일을 빠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가족여행도 포기하고 놀기 딱 좋은 12월 주말 내내 계속 일을 했습니다. 기둥이 제법 굵어진 나무처럼 생각이 크고 단단해진 아들을 보며 낯설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근무였던 지난 일요일, 집에서 쉬시던 사장님 부부가 아들을 보러 일부러 나오셨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10만 원이 든 봉투까지 건네시면서 군대 가기 전에 꼭 들르라고 하셨다네요.

 평소에도 일하는 학생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시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고 해요. 지난 추석에는 학생들 모두에게 선물세트를 주시고 연말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주문해서 나눠주셨습니다.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여유가 있다고 해서 나눠줄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품이 너르고 따뜻한 분들이라 가능한 일일 겁니다. 두 분은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셨지요.


 일을 그만둔 다음 날이자 마지막 월급날.

"엄마, 사장님이 월급보다 20만 원이나 더 보내셨어요. 너무 많이 주셨어요."

방에 있던 아들이 놀라서 나를 부릅니다.

놀란 아들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고 연락을 하니 마음 같아선 더 챙겨주고 싶었다고 하십니다. 아르바이트 생에게 보너스까지 챙겨주시는 너른 마음은 어떻게 하면 가지게 되는 걸까요?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들었는데 리더의 지갑이 멋지게 열리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울림을 주네요.


 비록 아르바이트이긴 해도 아들이 처음 경험한 작은 사회였던 핫도그 가게. 사장님의 마인드가 사람을 먼저 생각해서인지 장사도 잘 되었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갓 성인이 된 직원들에게 마음을 베풀고 나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행운도 재물운도 따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이 처음 경험한 작은 사회가 따뜻한 곳이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사장님이 베푸는 마음에서 항상 감사함을 느끼다 보니 아들도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에게 반죽을 잘 만든다고 매일 칭찬을 해주셨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나네요. 아들은 진정한 보스가 가져야 할 덕목을 가진 분에게 사회생활을 배운 것이지요. 직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리더로서 직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모두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두 분이 보여준 존중과 배려는 가정에서도 또 다른 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 02화 태양과 금성이 아닌 달과 지구 같은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