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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Sep 12. 2023

귀부인의 살롱에서 엿보는 19세기 예술문화

프랑스 살롱 음악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오늘은 19세기 프랑스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살롱'의 모습을 살짝 엿볼까 하는데요!


  음악계에 있어서는 쇼팽과 리스트를 비롯 드뷔시, 포레 등 젊은 예술가들의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었고, 귀족과 부르주아, 정치가와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담론을 나누는 세상과의 접점이 되어주기도 했던 곳입니다. 예술이 있는 곳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수많은 사랑과 우정과 (불륜커플들 마저도(?!)) 이곳 '살롱'을 통해 탄생했지요!

  자 그럼 대체 이 살롱이 무엇이냐, 에이 혹시 제목보고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무슨무슨 헤어살롱, 혹은 룸살롱 같은 거 떠올리신 분은 설마 없으시겠지요?


  17세기에 꽃 피우기 시작해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사회의 문화 예술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살롱은 프랑스 상류사회 귀족들과 예술가들의 격식 있고 우아하고 그리고 '폐쇄적인' 사교모임을 뜻합니다.


  많은 경우에 이 살롱을 개최하는 사람은 남자보다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주로 귀족 가문의 부인들이 주체가 되어서 개최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 살롱을 통해서 수많은 문학 작품들과 음악작품과 미술작품들이 태어났고, 예술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연인들도 태어났답니다.


 그럼 우선 이 한 장의 그림을 함께 보겠습니다!

요제프 댄하우저 Josef Danhauser(1805-1845), 피아노 앞의 리스트 (Liszt au piano )(1840)



 이 그림은 오스트리아의 화가, 요제프 댄하우저의 '피아노 앞의 리스트'라는 그림입니다. 그야말로 19세기 문화예술계의 별들을 이 한 장의 그림 안에서 만나실 수 있는데요!


  일단 오른쪽에 보이는 흰색 흉상은 대 음악가 베토벤입니다.

이 베토벤느님을 바로 앞에 두고 피아노가 놓여 있고요, 그 피아노에 앉으신 분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입니다.  당대의 BTS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요? 유럽의 어마어마한 아이돌 슈퍼스타였던 분이니까요!


  그리고 리스트 옆, 피아노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아 계신, 어깨를 드러내고 섹시한 뒷모습을 보이고 계시는 분이 마리 다구(Marie d’Agoult, 1805~1876) 백작부인. 바로 이 유명 살롱의 여주인이자 당시 유럽 사교계의 여왕이라 할 수 있겠어요. 6살 연하의 슈퍼스타 리스트와는 연인 관계였던 분이죠. 이름에서 드러나다시피 그녀는 유부녀였지만 말입니다!


  이번에는 리스트의 뒤쪽을 볼게요. 의자가 놓여있습니다. 먼저 의자 앞쪽에 앉아있는 분은 남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자입니다.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친구이자 쇼팽의 유부녀 연인, 여류작가였던 조르주 상드(George Sand,1804~1876)입니다. 당대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이자 찐 인플루언서(!)였던 그녀에게는 남장의 취미가 있었거든요. (댄디한 그녀의 스타일을 일컬어 패션계에서는 '조르주 상드 룩'이라고도 하지요! )

  조르주 상드는 72년의 인생동안 무려 20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과 짙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었던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여인이기도 한데요, 그중 한 명이 쇼팽이랍니다. (아니 갑자기 쇼팽의 존재가 하찮아 보이는 건 왜죠?(웃음) ) 쇼팽과 조르주 상드 역시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소개로 만나 그녀의 살롱에서 사랑을 키워 간 커플이기도 해요. 이 커플은 훗날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으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그곳에서 쇼팽의 많은 명곡들이 탄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조르주 상드의 옆에 앉은 사람을 볼게요. 이 분은 소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세상에 남긴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 1802~1870)입니다.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All for one, One for all'이라는 명대사는 언제 떠올려도 '간지 좔좔' 이군요!


  그리고 양 의자 사이, 뒤에 서있는 분이 누구냐, 이 분 역시 프랑스의 대 문호, 그 유명한 소설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탄생시킨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1802~1888)입니다. 뒤마와 위고, 19세기 프랑스의 낭만주의 문학은 동갑내기였던 이 두 사람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지요!   


  다시 시선을 옆으로 옮겨볼게요.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 옆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마른 체구의 남자, 이 분은 누굴까요?

와우! 맞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 무려 파가니니도 이곳에 함께 하고 있군요!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 리스트가 존경해 마지않던 바이올리니스트이지요. 젊은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미친(!) 연주를 보고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나는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어!'라고 결심을 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초절기교 피아니스트 리스트'를 만들어낸 계기였지요!

앗.. 그러고 보니 파가니니는 여기에 모인 리스트 또래의 다른 젊은 예술가들보다 20년은 선배일 텐데 저 자리에서 라테는~ 하는 꼰대짓은 안 했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마지막으로 파가니니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은 로시니예요.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윌리엄텔 서곡'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 수많은 대작을 남긴 작곡가이죠. 파가니니와 같은 이탈리아 출신이기 때문일까요? 그림 속의 그와 파가니니는 매우 친해 보입니다! 실제로 로시니 역시 파가니니를 매우 존경했었다고 해요. 미식가이고 성격도 좋았던 로시니는 평생 딱 세 번을 울었다고 하는데 그중 한 번이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을 때'라고 하지요!

나머지 두 번은 언제냐고요? 자신의 첫 오페라가 실패했을 때, 그리고 뱃놀이를 하다가 칠면조 요리를 강물에 빠트렸을 때. 라나요! 로시니는 정말로 먹는 것을 사랑했거든요!


  한 바퀴 끝난 줄 알았는데 로시니의 머리 뒤를 보니 초상화가 하나 걸려 있네요? 이 초상화도 한번 보실게요.  

이 분은 무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입니다. 바이런은 파가니니보다도 여섯 살이나 어리지만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지요. 이 그림은 1940년에 발표되었지만 인물들의 관계를 보면, 화가가 왠지 1935년 정도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리지 않았을까?라고 제 맘대로 추정해 보는데요, 그때는 이미 바이런이 고인이 된 후이지만 살롱 내에 걸려있는 초상화는 바이런에 대한 당대 예술가들의 사랑과 존경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와, 정말 이 한 장의 그림에 19세기의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와 소설가, 시인, 그리고 18세기의 악성(樂聖)마저..  예술을 사랑하는 우리들에게는 정말 황송한 이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 속 짱짱한 별들의 모임을 몰래 엿보는 기분이란!


  이런 예술계의 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그림 속 살롱의 주인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사람이었을까요. 많은 귀족 부인들의 살롱들 중에서도 특히 음악 살롱은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넓은 공간도 필요하고 음악가들의 보수도 필요하기 때문에 재력이 어마어마한 사람밖에 주최할 수 없었거든요!

  저 위의 그림에서는 섹시한 뒷모습만 보여주고 있는데.. 얼굴이 궁금하실 것 같아서 데려왔습니다.  

Henri Lehmann     Marie d'Agoult (1843)

  마리 다구 백작 부인, 당시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 사교계의 꽃이었다고 하는 그녀는 지성과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셀럽이었답니다!  마성의 연하남 리스트에게 한눈에 반해서 남편을 버리고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지요. 마성의 남자이자 슈퍼스타인 리스트 역시 문란한 바람둥이라 수많은 여자들이 그를 거쳐갔지만, 리스트의 아이를 낳은 건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이 유일하답니다!


  이 분이 운영하는 살롱에는 위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당시 유럽의 '인싸' 들은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해요. 그림 속 인물들 외에도 작곡가 베를리오즈,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그리고 쇼팽까지.. 역사에 남는 핫한 인사들이 마리 다구 백작부인 살롱의 단골 멤버였답니다.


  쇼팽이 프랑스 사교계에 제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분명 살롱을 통해서 일 겁니다. 리스트와 동갑내기이지만 '스타' 리스트와 달리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쇼팽이었기 때문에 그가 남긴 대부분의 피아노곡은 살롱이라는 친밀한 공간에서 연주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다고 해요.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의 회상에 의하면 쇼팽은 큰 콘서트 홀 보다 작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걸 좋아하고, 그런 공간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작품들에 담긴 지적이고 세련된 미의식은 살롱이라는 친밀한 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젊은 음악가들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일 뿐 아니라 다른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수많은 기회를 만날 수 있는 장소, 타 장르의 예술가와 사상가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곳,

  오늘은 한 장의 그림을 통해 19세기 프랑스 예술의 발전에 있어서 결코 떼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살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봤습니다!

  그럼 또 다음번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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