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 그 잡채,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오늘은 퍼니클래식이 아니라 충격과 공포의 클래식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심장 안 좋으신 분, 겁이 많으신 분, 임산부, 노약자 조심하셔야 합니다!
귀신 이야기냐고요? 아닙니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또...또라이거든요.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입니다.
요즘 맑눈광.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요, 환상교향곡을 들으며 이 사진을 보면 베를리오즈는 정말 맑눈과ㅇ.....
베를리오즈라 하면 <표제음악의 창시자>라고 중딩시절 우리는 음악시간에 배웠습니다. '표제음악'이란 스토리를 담은 음악을 뜻하지요! 베를리오즈는 음악사에서 처음으로 단순한 이미지나 풍경의 묘사를 넘어 음악에 '이야기'를 담은 인물이거든요. 마치 소설을 쓰듯이 말입니다. 음악사 최초로 문학과 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환상교향곡'이지요! 환상교향곡은 음악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곡입니다. 1830년, 베토벤 사후 고작 3년, 고전과 낭만 사이 과도기 시대에 쓰였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파격적이고 기괴하면서도 선진적인 곡이었거든요. 고전의 형식미를 깡그리 몽땅 무시하고 쓰인, 무형식에 가까운 악상 전개와 구성, 아름답고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이 교향곡에 대한 작곡자 자신의 해설의 내용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병적인 감수성과 상상력을 지닌 어떤 젊은 음악가가 절망적인 사랑의 상처를 참을 길이 없어 자살하기 위해 다량의 아편을 먹었다. 그러나 죽음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는 괴로움 속에서 일련의 기괴한 환상을 본다. 그 안에 환각, 감정, 기억이 그의 병든 뇌 안에 관념이 되고, 그리고 음악적인 영상이 되어 나타난다. 사랑하는 그녀가 하나의 선율이 되어 마치 고정관념처럼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들린다. "
원문:Un jeune musicien d'une sensibilité maladive et d'une imagination ardente, s'empoisonne avec de l'opium dans un accès de désespoir amoureux. La dose de narcotique, trop faible pour lui donner la mort, le plonge dans un lourd sommeil accompagné des plus étranges visions, pendant lequel ses sensations, ses sentiments, ses souvenirs se traduisent dans son cerveau malade, en pensées et en images musicales. La femme aimée, elle-même, est devenue pour lui une mélodie et comme une idée fixe qu'il retrouve et qu'il entend partout.
(인용 : 1855년판 Berlioz, Hector, Notes of "Symphonie fantastique, op. 14,)
위의 글은 1855년판 프로그램에 베를리오즈가 직접 작성한 서문입니다. 작곡가 자신의 해설에 따르면 이곡은 젊은 음악가가 실연의 상처를 이기지 못해 아편 음독자살을 시도하고, 잘 죽지 못한(?) 채로 환각을 보는 내용들인데요. 그 내용이 말 그대로 대환장파티입니다. 간단히 그 스토리를 볼까요?
1악장, 꿈과 정열. '병적인 감수성과 상상력을 지닌 어느 젊은 음악가'는 정열의 열병, 우울, 기쁨을 이유도 모른 채 느끼며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봅니다. 환상 속에서 사랑의 추억과 영혼의 떨림과 열정의 파도들이 우수와 같이 나타나 마침내 화산처럼 폭발하고 맙니다.
2악장, 무도회. 아름다운 왈츠가 흐르는 무도회에서 그녀와 재회합니다.
3악장, 들판의 풍경. 어느 여름날 저녁, 들판에 홀로 선 음악가는 그녀를 잊으려고 하지만 이르는 곳마다 그녀의 환영이 나타나 동경을 불러일으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전개라고요?? 노노, 베를리오즈의 진정한 광기는 바로 이 4악장에서부터 나타나거든요.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실연에 괴로워하고 아파하던 청년이 사랑에 집착한 나머지 그만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 죄로 본인도 사형을 선고받고 단두대로 걸어가고, 마침내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집니다.
5악장 마녀들의 밤연회. 사랑하는 여인이 이번에는 타락한 여인, 마녀가 되어 등장합니다. 망령, 마법사, 요괴와 이름 모를 악마들이 그의 장례식을 위해 모입니다. 기괴한 대화와 웃음소리, 멀리서 들리는 비명. 광란의 축제 속에서 음악이 끝납니다.
어떠세요? 스토리만 들으면 말 그대로 정신병자의 대환장파티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이 교향곡을 일컬어 대지휘자 번스타인은 '음악사상 최초의 사이키델릭(Psychedelic. 환각적, 정신착란적)한 교향곡'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오싹한 것은, 이 곡이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교향곡이라는 점이지요!
이 사진 속의 요염한 미녀의 이름은 '해리엇 스미드슨'. 당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입니다.
1827년 가을 어느 날, 영국에서 온 셰익스피어 연극단의 '햄릿' 공연 소식에 프랑스가 시끌벅적하던 때였습니다. 객석에는 당대 프랑스 예술계의 저명인사였던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조르주 상드, 그리고 무명의 베를리오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베를리오즈의 미친 사랑(!)이 시작이 됩니다. 햄릿의 오필리아 역할을 맡았던 아일랜드 출신의 바로 이 여인, 해리엇 스미드슨에게요.
베를리오즈의 짝사랑은 거의 스토킹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머무는 곳 근처에 숙소를 잡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절절한 사랑의 편지를 (프랑스어로! )보냈다고 해요. (아일랜드 출신의 그녀는 프랑스어를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일방통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당시 유럽의 인기 절정 여배우는 나이 어린 한낱 무명 음악가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지요.
절절한 짝사랑의 아픔과 실연에 괴로워하던 그때, 환상교향곡은 바로 그 시기에 만들어진 곡입니다. 이 곡 서문에 나오는 실연의 상처에 괴로워하는 '병적인 감수성과 상상력을 지닌 어떤 젊은 음악가'란 바로 베를리오즈 자신이었던 것이지요.
사람 일은 참 재미있는 법이지요, 결국 이 베를리오즈의 일방적인 사랑은 그로부터 5년 뒤에 결실을 맺습니다. 5년 후에는 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거든요.
1830년, 환상교향곡의 초연이 대 성공을 거두고 베를리오즈는 승승장구하며 유럽에서 주목받는 젊은 음악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반대로 해리엇 스미드슨은 늘어난 체중으로 더 이상 비중 있는 역할을 맡지 못하는 나이 든 퇴물 여배우가 되어버렸지요. 사람의 인생이 180도 바뀌는 데 5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1832년, 환상교향곡의 연주회의 방청석에 앉아있던 해리엇 스미드슨. 그녀는 지금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이 아름답고도 위대한 곡의 작곡가가 지난날 나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던 그 정신나간 젊은 무명 작곡가이고, 이 곡이 나를 위한 곡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실연의 감정을 이토록 놀라운 음악으로 승화시킨 베를리오즈에게 사랑을 느끼지요.
1833년, 둘은 결혼을 합니다. 해피엔딩이냐고요?
그럴 리가요!(웃음) 격정과 광기의 대예술가의 인생이 그렇게 심플하지는 않았거든요!
결혼 후의 이야기가 또 재미있지만, 그 이야기는 언젠가 다음 글에 해 보기로 합니다. 오늘은 광기의 4악장을 함께 들어보고 싶거든요!
알고 들으면 소름 끼치는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함께 감상하기 전에 리얼리티를 위해서 우리 함께 '사랑했던 여인을 살해한 죄목으로 단두대로 끌려가는 그 사형수의 기분'에 살짝 빙의해 보기로 합니다. 레드 썬!
보답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결과로 사랑하는 여인을 죽였고,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죽음을 향한 그로테스크한 행진은 팀파니의 불길한 리듬으로 시작합니다. 반 미치광이가 된 남자의 모습, 그리고 단두대 앞에 모인 군중의 모습, 그 불길하고 기괴한 발걸음이 느껴지시나요.
마지막 42분 20초 무렵에는 환상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연인의 주제가 클라리넷 솔로로 나옵니다. 이 부분은 사형수의 마지막 독백과도 같습니다. 죽이도록 사랑했던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일까요, 혹은 그녀와 함께 행복하고 싶었던 주인공의 아직 다 버리지 못한 삶에의 집착이나 미련일까요, 행복의 환상일까요.
그러나 이 아름답고도 애처로운 클라리넷의 선율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오케스트라가 포르티시모로 쾅! 하고 떨어집니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죠.
이다음 순간이 또 재미있는데, 짧아서 금방 지나가니 잘 들으셔야 해요. 쾅! 하고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진 이후에 도동! 하는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들으셨나요? 도동! 하는 이 소리는 바로 댕강하고 잘린 목이, 데구루루하고 굴러 떨어지는 장면입니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도 리얼한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을 쥐고 저절로 숨을 죽이게 되는 그런 순간에도, 광기의 천재 작곡가는 긴 여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목이 잘린 후에는 두대의 스네어드럼(사이드드럼)과 타악기들이 화려하게 연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금관악기의 포효. 화려한 팡파르 이후의 5악장, 마녀들의 춤. 이 환호는 우리 속의 모순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무섭고 섬찟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곡입니다. 자신의 망상이나 욕망, 자기 현시욕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세세하게 음악에 묘사하며 한 편의 거대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 작곡가는 베를리오즈가 최초였을 겁니다.
핼러윈이 있는 10월 밤, 베를리오즈라는 천재음악가의 신들린 듯한 광기를 마음껏 만끽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