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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Dec 15. 2023

도쿄의 서점에서, 도시의 문화적 감수성에 대하여

아자부다이힐즈의 大垣書店(오가키 서점)

  얼마 전,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SNS에 ‘아름다운 서점’이라 극찬했던 글을 읽고 나는 궁금해졌다. 대체 이곳의 어떤 포인트가 K컬처의 나라에서도 문화와 디자인을 선도한다는 기업의,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비롯하여 수많은 아름다운 건축 공간 프로젝트를 추진한 그의 눈에, ‘마음 아플’ 정도로 부럽고 아름답게 비추었던 걸까.


  라이프 스타일 공간으로서의 서점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미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근 10년 한국과 일본의 대부분의 서점들은 츠타야의 마스다 무네아키의 영향을 적어도 받았을 것이다. 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 시대에 취향을 디자인하고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지적 자본으로서의 공간. 오늘날 한국의 대형 서점들도 대부분 이러한 ‘복합적 문화 공간’을 표방하고 있으며 현대카드라는 브랜드 또한 그간의 사회 활동과 미디어를 통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서의 철학을 전달해 왔다.


  모던하지만 전통적 요소가 어우러진 절제된 공간, 섬세한 간접조명 밑에는 세상의 모든 취향을 반영하는 것 같은 전문 서적들과 잡지, 아름다운 아트북들, 카페와 갤러리, 그리고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다목적 휴게 공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문화 거점‘을 표방하는 여타 북스토어들에 비해 특별한 참신함을 가지는 걸까. 나는 이런 궁금증들을 안고 오가키 서점을 재차 방문했다.


  300평 규모의 내부를 산책하듯 걸으며, 내가 떠올린 것은 ‘향유의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새내기 유학생 시절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동아리 생활을 하며 느꼈던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악기나 장비나 실력에 필요 이상 집착하지도 않고, 사교나 친목을 지나치게 내세우지도 않으며,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케이크가 되었든 야생새가 되었든 철도가 되었든, 취미 그 자체가 올곧이 목적인 취미를, 진심으로,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깊게 즐기는 모습. 그 이후 19년 동안 나는 일본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순수한 열정과 몰입으로 만들어진 작은 금자탑들을 마주하고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적 감수성의 깊이는 트렌드나 대중문화와는 달라서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들여다보아야만 비로소 보인다.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으며, 결코 돈으로 살 수도 없다. 긴 세월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탄탄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 드러나는 정말 작은 한 끗의 차이.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1%의 차이는 분명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한 사회는 화려하지 않아도 품격이 있다.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은 시대라고 한다. 요즘같은 세상에 누가 책을 읽냐고들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서점은 여전히 한 나라의 거울이다. 문화와 디자인 경영을 선도하는 기업인이 도쿄의 새로운 랜드마크에 세워진 서점에서 무엇을 느끼고 보았는지 그의 마음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나는 어렴풋이 그가 느꼈을 '마음아픔'에 공감이 간다. 매력적인 유산으로서의 한 나라의 문화자본, 그 안에 깃들인 여유, 세심한 곳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감수성의 깊이.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한 나라의 사회 문화적 성숙도가 은은하게 드러난다.

  케이컬처의 시대, 문화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는 기꺼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오가키 서점은 관동지방에서는 익숙치 않은 이름이다. 구글링을 해 보니 교토가 본거지. 예상대로 아자부다이 힐즈가 관동지방 첫 진출이라고 한다. 타깃은 아자부다이 힐즈라는 공간을 찾는 부유층. ‘의외의 발견과 만남이 있는 공간’이 브랜드 컨셉.


  블랙을 기조로 한 심플하고 절제된 공간이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구석구석마다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딱 1인용 씩이다.

이 바로 옆에 있던 도코노마 장식에서는 일본스러움이 물씬.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공간은 한 구석의 다목적 스페이스.

전면 통유리로 되어 조용한 재즈가 흐르는 다목적 프리 스페이스에서는 아자부다이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의자도 고오급스러우며 편안하다. 바로 옆에는 카페가 있다. 모던하면서도 전통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공간에서 한 나라의 문화자본과 취향이 은은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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