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tton Salam Apr 03. 2023

36. 이제부터 내가 너의 주인이다 - 기타 02

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36

36. 이제부터 내가 너의 주인이다 - 기타 02


 그렇게 위기의식을 느낀 채 허우적대다 보니 어느새 일요일아침이 밝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회에 질질 끌려가 영혼 없이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무대 앞 구석에서 눈에 띄는 뭔가를 발견했다. 다른 악기들은 모두 주인이 있는데 그 악기만 주인이 없었다. 그것은 기타였다.

  나는 예배가 끝나고 조심스레 악기에게 접근했다. 녀석의 먼지가 뽀얗고 얇게 쌓인 채 한쪽구석에 가만히 처박혀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기타에게서 아더왕의 엑스칼리버 같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상태를 보아하니 모두에게 외면받은 지 꽤 오래된 듯했다. 그래서 내가 주인이 되어 주기로 했다. 나는 소외된 그 녀석을 냉큼 가방에 주워 다가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돌아와 기타 가방을 열었다. 던전에서 보물상자를 열 때의 기분이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봐도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낡아빠진 고물기타가 확실했다.

  기타를 꺼내 대충 손질을 하고 아는 사람한테 사정해서 새 줄도 얻어와 교체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잘 닦고 손질을 좀 한다고 해서 상태가 좋아질 만한 수준의 기타는 아니었다. 그래도 난 맘에 들었다. 내 맘에 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시간부로 연습한답시고 기타 가방에 들어있던 책을 보며 사정없이 6줄을 긁어댔다.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조차 연습할 때 나는 소리마저 마냥 아름다울 순 없듯, 내가 발생하는 소음은 아마 주변사람들에게 대단한 폭력이었음을 확신한다.


  기타는 만만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급이 다른 난해한 악기였다. 베토벤은 이 기타를 보고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부를 정도였다. 역시 나의 보는 눈은 형편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악기가 주는 난해함보다 어설프게나마 조금씩 음악을 만들어가는 내가 너무 신기했다. 음악의 ‘ㅇ’도 몰랐던 내가 음악을 만들어 내다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이런 식의 성취감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중간에 기타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무지성으로 쉼 없이 연습했던 기타는 결국 나에게 1학년 2학기와 2학년 2학기때 A+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점수들이 좋은 연주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다른 동급생들이 단소와 리코더로 겨우 상황을 모면했기 때문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