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 내가 젊었을 때 전성기를 누리던 최고의 영화배우가 드라마에서 조연 엄마, 아빠 역으로 나올 때이고
놀러가는 것보다 집에서 TV나 책보는 게 더 좋을 때이며
옷 살 때 젊어 보이는 스타일 고를 때와
물 좋은 고급술집보다 조용한 동네 술집이 좋을 때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었고 방송을 보면 100세 시대란 말을 귀가 아프게 듣는다. 암도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며 외국에 가지 않아도 세계최고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하지만 경제사정 안 좋다는 대표적 표현이지 요즘 우리나라에서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은 없고 자본주의의 폐해는 늘어나도 세상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부유층의 문화였던 레저생활도 대중화되었고 가격도 부담이 없어 누구나 저렴하게 스포츠 센터를 이용할 수 있으며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시민을 위한 운동시설은 동네 가까운 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많다.
스포츠TV가 아니어도 운동 프로그램은 채널마다 볼 수 있고 매스미디어를 통한 의학정보 프로그램은 수준 높은 의학상식을 제공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전문가가 성분과 효능까지 자세히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많다보니 그냥 주워듣는 정보만으로 꽤나 높은 상식을 쌓게 된다.
예전에는 나이 60이 되면 가족, 친지 모두 초대해서 거창한 환갑잔치를 했었지만 요즘은 가족끼리 외식이나 하고 착한 자식들은 60세 기념으로 해외여행 보내드리는 문화가 생긴 지도 오래됐다.
한국의 통계기준으로 보자면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고 사회적인 혜택도 주지만 100세 시대에 60세 초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고령층의 증가 추세에 따라 미국은 정년제를 1967년에 65세에서 1978년에 70세로 연장한데 이어 1986년에 정년제 자체를 폐지했고 영국은 65세였던 퇴직연령을 2010년에 폐지했으며 UN은 2015년에 80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과 함께 18~65세는 청년(Youth), 66~79세는
중년(Middle), 80세가 넘은 연령을 노인(Old)으로 분류하고 100세가 넘으면 장수노인(Longlived eldderly)이라는 발표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도입되진 않았고 우리나라도 현행 65세의 정년을 70세로 상향조정하자는 논의를 본격화한 상태이다.
요즘에는 결혼적령기라는 얘기도 이젠 낯선 단어여서 공부하고 유학 갔다 오면 40이 넘어도 중매 들어오고 연상, 연하 커플 당연하고 이혼도 흉이 아니며 20대에 결혼하면 너무 빠르다고 친구들이 만류하고 속도위반했다고 오해 받기도 한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며 소외된 노년층 제외하면 인터넷 못하는 사람도 없다.
세계 곳곳의 뉴스를 생중계로 볼 수 있고 할리우드 개봉작도 미국하고 꼭 같이 본다. 해외 신간
베스트셀러가 출간되면 며칠 만에 번역본으로 볼 수 있고 퇴근하면서 집안 에어컨, 보일러를 유비쿼터스(ubiquitous)로 작동하며 살고 있다.
너무 편리하고 발전된 첨단시대에 살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편한 게 넘쳐나다 보니 부작용도 함께 넘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국적 없는 인스턴트 식품에 중독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운동부족으로 성인병 인구는 나이 안 가리고 증가하며 입시교육만 받는 청소년들은 건강은 물론 정서까지 피폐해지면서 실종된 인성교육은 세대를 넘어 계속될 전망이어서 가뜩이나 메마른 정서가 대중문화까지 변질시키는 양상을 초래하고 있다.
책을 보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수도권 소규모 서점은 50%가 폐업을 했고 컴퓨터 인터넷을 통한 혼합된 문화가 증폭되는 현상 속에 TV,유튜브에서는 뜻 모르는 단어들이 속출한다.
그러다 보니 중년세대는 하루가 바쁘게 변하는 문화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신개념을 모르면 소외 받는 건 당연한 일반사가 됐다.
그러나 몸은 건강하고 능력이 있는 중년들이 너무 빨리 밀려 나는 세태이고 직장에서 생존하려면 일 잘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특출해야 쫓겨나지 않고 집안에서는 살림도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자식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하기 바쁘다보니 정작 자신의 생활은 없는 게 중년의 현주소이며 그나마 그것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호강이고 퇴출된 가장과 가족들은 갑자기 바뀐 현실을 감당하기도 힘든 인구가 늘어만 간다.
따지고 보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이 설자리가 점점 감소한다는 것이고 나이와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시대의 주역으로 살려면 경제적 여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해도 중년이 되면 자기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노련한 경험보다는 새로운 첨단 시스템을 사회가 요구하게 되면서전문가로서의 수명이 짧아지는 겉은 멀쩡한 중고가 되어 가는 게 현실이며 100세 시대의 50대의 퇴출은 현실과는 맞지 않는 사회적 괴리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성숙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며 진정한 가치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제적 안정과 함께 높아진 사회적 대우를 즐길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전 같지 않은 건강을 느끼고
거울을 볼 때 마다 흰머리가 늘고 잔주름이 짙어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돌아보면 어제 같은 일들이 어느덧 한참이나 오래된 추억으로 묻혀있고 세련됐던 명품시계가 단종이 된 것을 알게 된다.
점점 소실되는 젊음에 대한 집착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세상을 보는 지혜는 늘어나는 반면 서서히 찾아오는 노화라는 불청객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바쁘게 살다보면 시간의 경과를 느낄 새가 없고 여느 때처럼 앞만 보며 가게 되지만 가끔 속도에 제동이 걸리고 익숙했던 일들의 작은 변화가 잦아지면서 문득 문득 변화된 자신을 발견할 때가 중년이다. 친구를 만나 술이라도 한잔 하게 되면 옛날 추억이 즐거운 화제이고 이 정도면 잘 살아 왔다고 서로가 애써 위로를 해보지만 언제나 초연할 수 없는 자신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젊을 때 느낄 수 있던 감성은 다 어디로 갔는지 눈에 보이는 결과의 만족만이 즐거움이고 옮기는 발걸음 마다 세월의 무게가 실려내리며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면 걱정만 앞선다.
다사다난한 인생이라는 여정은 많은 사연들과 함께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순서 없이 지나가는 것이다.
세상을 알게 되는 성숙의 과정은 소멸되는 젊음을 감수해야 하는 시기이고 여물어진 단계가 그 다지 좋지만은 않은 시기라는 걸 실감하노라면 곧 시들어질 자신이 두려워 지기도 한다.
때로는 연륜이 주는 여유로 자신을 달래려 애써 봐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위안이 되는 것이 중년의 정서가 아닌가 싶다
인생의 여정에서 중간쯤 왔는지 짐작해 보지만 종착지를 모르는 여행이다 보니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종착지를 모르는 건 자신만이 아니고 젊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오게 된 시간과 오늘을 만들어준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하고 중년에 찾아드는 미묘한 정서는 경종이며 시보이므로 위안 보다는 지난 시간을 통해 소유하게 된 유형, 무형의 결과에 감사하고 깊이 있는 변화에 만족해야 한다.
세월과 함께 변화된 감성은 나름대로의 깊이가 있고 진화된 가치가 있는 법이다.
젊었을 때 좋아했던 책을 다시금 읽어 본다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고 작가의 색채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면서 변화된 자신을 자각할 수 있다.
유형의 결실이 없다 해도 누구나 무형의 자산은 있기 마련이고 세상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 무의미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은 또 다른 삶의 에너지가 되고 그 에너지는 나이를 초월한 추진력을 제공할 것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시기가 중년이므로 진행형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둘 필요도 없고 살아갈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시간을 가늠해 볼 필요도 없다.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으니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이고 자신의 노고를 자찬할 수 있다면 내일에 대한 염려는 접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