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죽음

by 서퍼스타

침대에 누워 할 일 없이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넘기던 중,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디오구 조타’의 부고를 접하게 됐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알법한, 꽤 이름이 알려진 선수로서 빠른 발과 저돌적인 돌파로 많은 골을 만들어 내며 뛰어난 실력을 뽐내던 공격수이다.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선수이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스타’이자 같은 ‘축구인’이기에 그의 죽음이 참으로 애석하게 느껴질 것이다.


기사에 적힌 ‘향년 28세.’ 향년 28세라... 82가 아닌 28이란 숫자 앞에 붙은 ‘향년’이란 단어에서 낯설고도 까끌한 씁쓸함이 느껴졌다.


낙화(落花)

우리는 일상이나 문학에서 꽃이 지고, 꽃잎이 떨어지는 현상을 슬픔, 좌절, 죽음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 해석한다. 왜 그런 것인가? 꽃이 짐은 열매를 맺고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식물의 다음 생애주기로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꽃은 찬란하고, 생기발랄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과 죽음. 이 상반된 두 단어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생애주기를 거스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편함과 상실감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게 한다.


역사적 비극이었던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적 공분을 산 이유 역시 그 대상이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돋아난 푸르고 싱그러운 새싹이 무자비하고 거친 파도에 의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이자 국가적 비극이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죽음에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슷한 나이대의 자녀를 둔 유대적 공감일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어른으로서의 자책감일까, 어린 시절의 나를 죽이는 투영감 때문인가...


무엇이 됐던 이 젊음의 죽음은 한동안 나를 씁쓸하게 할 것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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