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향하는 긴~ 긴~ 여정. 순례자들은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길을 건넌다. 순례자의 수행길인 만큼 오리지널은 역시나 두 다리를 이용한 걷기이며, 실제로도 거의 대부분이 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초의 순례자라 할 수 있는 ‘산티아고(Santiago)’가 걷기 시작한 날로부터 비약적인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의 개성 또한 변화한 지금은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투에니원 센츄리이다. 이는 순례자의 교통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 자전거나 오토바이와 같은 신문물(?)을 장착한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좀 더 세월이 지나 로봇이나 하늘을 나는 원반을 타는 시대가 되면(꼭 오리라고 믿는다!), “나 때는 말이야 이 길을 걸어 다니곤 했지”라며 건강했던 옛날의 추억을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손주 녀석은 “에이! 할아버지 거짓말하지 마세요”라며, 지금의 아이들이 내비게이션 없이 종이지도를 보며 운전하던 시절을 믿지 않는 것처럼, 허언증 가득한 구닥다리 MZ세대(사실 MZ세대도 아니지만) 취급을 할지도……. 하여튼 나는 대세에 휩쓸리는 소시민으로서, 역시나 걷는 방식을 취했지만(사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생각조차 못했지만) 여정 첫날 피레네산맥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 군단을 보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헉헉거리며 커다란 바위에 들러붙은 개미마냥 한 걸음 한 걸음 피레네산맥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고요했던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출몰한 오토바이 군단.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느닷없이 나타난 오토바이에 어리둥절 했다. 마치 뭐랄까…… 자주 다니는 동네 떡볶이 매장에 메시나 비욘세가 나타난 느낌이랄까? 여기에 저게 왜? 중세 시대로 타임슬립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자, 시간여행 끝났습니다. 다시 21세기로 돌아갈게요”라며 서비스가 종료된 느낌이랄까? 급작스럽게 넘나드는 시대에 정신이 혼미했다.
쭉 뻗은 초록 능선을 시원하게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보고 있자니 멋있고 부러운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그렇게 부러움에 취하기도 잠시 “저래도 되는 거야? 반칙 아니야?”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규칙(?)에 대한 의문 과 함께 질투심이 폭발했다. 오토바이 다음으로 마주한 또 다른 교통수단은 바로 자전거이다. 오토바이는 피레네산맥 이후로는 보지 못했는데, 자전거는 순례길 내내 종종 마주했다.
자전거는 우수한 기동성과 함께 건강한 이미지도 챙기는 일타쌍피의 수단이었다. 게다가 오르막길에선 오히려 걷는 것보다 빡세기에 “그래. 저 정도면 인정!” 순례길의 가장 큰 표밭인 뚜벅이들의 민심까지 챙겨갔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또한 여러 옵션을 장착한 모습을 선보였는데, 자전거에 카트를 연결해 짐을 싣거나 아 이나 애완견을 태우고 다니는 이들도 심상찮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도보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초창기 순례길의 모습을 고증 하는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멋이란 게 폭발하는 교통수단 ‘말’이 있다. 처음 말이 등장했을 때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관심은 대스타를 마주한 팬의 모습이었다.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며 등장한 말은 순례자들의 카메라 세례와 함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뜨거운 콧김과 꿈틀거리는 다리근육, 채찍처럼 흔들리는 꼬리, 깊이를 알 수 없 는 검은 눈을 비롯한 거대한 동물에서 오는 위압감. 울타리 밖에서 마주한 말은 야생에 놓인 듯한 생경한 긴장감을 갖게 했다.
말 역시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짐만 싣거나 아이만을 태운 모습이었다. 이들 중에는 꽤나 독특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모자와 바지, 상의는 과감하게 탈의한 모습으로 말을 끌고 나타났다. 이는 당연 시선 집중! 카메라 ON! 휘파람 세례까지 받는 대스타 대접을 받았다.
이렇게 교통수단의 차이로 개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순수 뚜벅이 중에도 넘치는 끼를 주최 못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꾸밀 것이라곤 내 몸 하나이니 힘을 주는 건 바로 복장. 가장 대표적인 건 아무래도 전통 순례자 복장이다. 먼 옛 시절 순례자처럼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짚으며 길을 걷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과 카메라를 즐겼으며, “내가 산티아고다~”라 외치며 맡은 배역에 완벽히 몰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고된 순례길에 웃음을 주는 단비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수수한 차림과 느린 속도로 존재감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한 한국인 아저씨. 우박이 떨어지던 날. 모두가 정비를 마치고 느긋이 쉬고 있을 때 맨발 차림의 한 아저씨가 알베르게에 느지막이 도착했다. 맨발로 걷기에 하루에 걷는 길은 길지 않았으며, 속도 또한 느렸다. 남들보다 몇 배는 고통스럽고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저씨. 떨어지는 우박에 다음날 일정을 걱정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비가 오면 땅이 부드러워져서 오히려 걷기 좋다는 아저씨의 말에 하루쯤은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한 덩치 큰 외국인 남자도 다른 이들보다 느린 속도로 길을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길을 걸으며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모두 주우며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낭만 해도 버거운 길을 커다란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남자. 자연과 동물을 사랑한다는 이 남자는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작은 생명에게는 치명적임을 알고 ‘나 하나라도!’라는 작지만 감히 흉내 내기에 큰 실천을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순례자들로 하여금 길은 더욱 다채로운 빛을 낸다.